지역 경제 취약해 자금 공급에 한계
"지역 투자 프로젝트에 자금 공급 유도해야"
[서울=뉴스핌] 최유리 기자 = 은행이 지방에서 받은 예금만큼 지방에 대출·투자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지역재투자 제도'가 내년부터 시범 실시된다. 지역대출 비중을 의무화한 강제안이 아닌 유인책을 제시했지만 은행권에선 여전히 냉랭한 반응이다.
지역 불균형 발전의 해결책을 대출 확대에서 찾는 정책적 판단에 공감대가 낮을 뿐 아니라, 지역 투자에 대한 평가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평가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금융회사가 지역에서 거둔 예금을 지역 실물경제에 재투자(대출)하도록 유도하는 '지역재투자 평가제도 도입방안'을 확정했다.
평가 대상은 시중은행과 대형 저축은행이다. KB국민은행,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등이 해당된다. 자금의 역외유출 우려가 적은 외은지점과 인터넷 전문은행은 제외했다. 이들은 매년 수도권을 제외한 13개 지방 광역시·도에서 평가를 받는다.
평가 내용은 지역에서 거둬들인 예금 대비 대출 실적, 지역 중소기업·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실적, 지역 내 인프라(지점·현금자동입출금기) 투자수준 등이다. 금융위는 평과 결과를 5등급(최우수~미흡)으로 나눠 공개하고, 인센티브를 부여할 방침이다. 지자체 금고은행이나 법원 공탁금보관은행 선정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9일 전북 전주 지역금융 활성화 현장간담회에 참여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금융위] |
금융위가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지역경제 규모에 비해 자금공급이 부족하다는 문제 의식에서다. 2016년 예금취급기관의 지역별 예금 대비 대출 비율을 보면 인천(125.6%), 경기(111.0%)에 비해 강원(59.2%), 전남(66.0%), 경북(78.6%) 등 지방이 낮은 수준이다. 수도권과 달리 지방에선 예금에 비해 대출로 풀리는 돈이 적다는 의미다.
그러나 은행권에선 지역에 대출이나 투자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는 게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지역별 경제가 불균형한 상황에서 대출을 늘리려 해도 이를 흡수할 여건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지방은행 관계자는 "지역 경기 자체도 좋지 않고, 글로벌 경기 등 여러 조건과 맞물려 있어 은행이 대출을 늘린다고 모든 게 좋아지지는 않는다"며 "지역에 돈을 흘려보내자는 취지는 알겠지만 상황이 녹록치는 않다"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출을 늘릴 경우 건전성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른 지방은행 여신담당자는 "대출은 철저히 내부 기준에 따라 적정성을 판단하는 것이지 인센티브를 얼마 더 주고 말고 해서 느는 게 아니다"라며 "오히려 그럴 경우 건전성이나 연체율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평가 기준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 영업망을 갖춘 시중은행의 경우 기존 점포나 ATM(현금자동입출금기)도 없애는 추세인데 이를 지역 인프라 투자로 평가하는 것은 시대와 맞지 않다는 설명이다. 차라리 은행이 직접 지역에서 필요로 한 시설을 늘리도록 하는 게 낫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특히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모두 평가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지방대출 확대를 유도하는 유인책을 제시했지만 또 다른 과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줄세우기 식으로 성적을 매기면 평판이 중요한 은행에선 민감한 문제"라며 "기술금융이나 관계형 금융같이 실적을 채워야 하는 또 하나의 숙제가 생긴 것"이라고 토로했다.
박창균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자금 유입 부족이 지역 경제 침체나 부진을 견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지역 자금의 외부 유출이라는 관점보다는 지역 인프라를 비롯한 지역적 가치가 큰 투자 프로젝트에 자금 공급이라는 정책 목표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