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국가유공자, '간호수당'과 중복지원 문제 얽혀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이용 불가능... 복지 역차별 논란
보훈처 "형평성 문제 있어...관계부처와 협의중"
[서울=뉴스핌] 구윤모 기자 = #1급 중증장애인 국가유공자 A씨(52)는 32년 전 군 생활 도중 경추가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다. 사지가 마비된 A씨는 현재 왼쪽 팔만 조금 움직일 수 있을 뿐 타인의 도움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설상가상으로 돌봐주던 부모마저 지난해 사망하며 A씨의 삶은 더욱 막막해졌다.
국가보훈처에서 지급해주는 간호수당으로 간병인을 고용하려고 해도 중증장애인인 A씨를 돌보겠다는 간병인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더욱이 비용 문제로 밤까지 간병인을 고용하기도 어렵다.
보건복지부가 1~3급 장애인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국가유공자라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신청조차 할 수 없다.
![]()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A씨는 "대부분의 중증장애인 국가유공자들은 제대로 된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면서 "혜택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장애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혜택만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 '간호지원과 중복혜택' 활동지원 대상에서 배제된 장애인 국가유공자
장애인 국가유공자들이 장애인의 자립을 돕기 위해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를 이용하지 못하며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보건복지부와 국가보훈처의 모호한 제도 운영 속에 나라를 위해 헌신한 국가유공자들이 오히려 복지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2011년부터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로 혼자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이 어려운 1급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장애인활동지원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후 2013년 2급, 2015년 3급 장애인으로 점차 지원 대상을 확대·운영 중이다. 올해 기준으로 7만여명의 장애인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
제도 이용을 원하는 장애인이 주소지 읍면동 주민센터나 국민연금공단 지사에 신청하면 시군구에 설치된 수급자격심의위원회에서 1~4등급으로 활동지원등급을 평가한다.
이후 시군구에서 인정한 활동지원기관을 통해 활동지원사를 배정 받아 등급별로 보장된 시간동안 활동지원을 받는다. 현재 전국 1079개 활동지원기관이 설치돼있으며 6만5000여명의 활동지원사가 장애인의 신체·가사·사회활동 등을 포함한 일상생활 및 직장생활에 필요한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최중증장애인의 경우 기본 제공 시간 118시간(127만원)에 1인 가구, 취약 가구 여부에 따라 273시간(293만8천원)을 추가지원 받을 수 있다. 또한 직장·학교생활 여부 등 추가 조건에 의해 중복산정이 가능하며 각 지자체에서도 예산을 편성해 별도로 추가지원 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 국가유공자들은 정작 이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유공자 중 상이등급 1·2급, 3~5급 중 고시로 정하는 국가유공자의 경우 최소 73만7000원에서 최대 230만6000원가량의 간호수당을 받고 있어 활동지원제도와 중첩된다는 것이 이유다.
2015년 국가유공자도 장애인 등록이 가능해지며 장애인 관련 시설 이용과 일자리 지원 등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활동지원제도는 이러한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됐다.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이 지난해 보훈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간호수당을 받고 있는 장애인 국가유공자는 총 3187명이다. 이중 총 450명이 활동지원 조건을 충족함에도 혜택을 받지 못하며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같은 장애등급을 갖고 있어도 국가유공자라는 이유로 일반장애인이 받는 혜택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
[표=국가보훈처 제출자료. 권미혁 의원실 재구성] |
◇ 활동지원에 비해 지원 수준 낮은 간호지원...직접 고용 어려움도
쉽게 말하면 국가유공자로 분류된 장애인은 금전이 지원되니 그 돈으로 간병인을 구해 활동보조를 하라는 것이고, 복지부 주관의 장애인은 중증으로 판정나면 간병·간호인이 찾아와 돌본다는 의미다.
장애인 국가유공자들은 간호지원수준, 즉 국가가 제공하는 돈이 복지부가 시행중인 직접 간호 간병인 제도에 비해 현실성이 턱없이 부족한 점을 문제로 꼽는다. 오히려 복지 '역차별'이라고 주장한다.
일반장애인 중 최중중 독거장애인은 활동지원제도를 통해 복지부로부터 약 391시간의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으며 지자체로부터 추가지원을 받을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10월부터 기존 최중증 독거장애인 92명을 대상으로 하던 24시간 활동서비스를 200명으로 확대키로 했다. 그러나 장애인 국가유공자들이 받는 간호지원은 최대 지원금이 230여만원에 불과해 간병인을 낮 시간밖에 활용할 수 없다. 각종 위험 상황 발생 가능성이 높은 야간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이다. 돌봐줄 가족이 없는 독거 장애인들에겐 더욱 치명적이다.
무엇보다 국가유공자 장애인에게 적용되는 간호지원은 중증장애인이 수당을 받아 직접 간병인을 구해야 하는 어려움도 크다. 특히 지방은 간병인력이 부족해 상황이 더 열악하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반면 복지부의 일반 장애인 활동지원은 국가에서 지정한 중개기관을 통해 연결도 가능해 제도이용이 다소 쉬운 측면도 있다.
환자를 돌보는 간호지원과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활동지원의 목적이 다른 점도 장애인 국가유공자들이 활동지원제도 이용을 원하는 이유다.
정태근 으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간병은 환자를 돌보는 것이고 활동지원은 기본 교육을 이수한 활동지원사가 장애인이 주체적인 삶을 영유할 수 있도록 돕는 개념"이라며 "간병인이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 장애인 국가유공자 "활동지원·간호지원 중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
장애인 국가유공자들은 중복지원이 문제라면 간호지원과 활동지원 중 원하는 서비스를 직접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의 소관 부처가 복지부와 보훈처로 나뉘어 있고 관련법이 미비한 탓에 이마저도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들이 활동지원제도를 이용하려면 국가유공자 지위를 포기하는 방법밖에 없다.
문제점이 지적되자 민주당 박찬대 의원이 지난해 두 제도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1년간 소관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하고 계류하고 있다. 박 의원 측은 "복지부와 보훈처 간 협의가 필요한 사항이라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훈처는 현실적인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관계기관과 협의가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국가유공자가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대상에서 일괄 배제된 것은 역차별 소지가 있다"면서 "장애인 국가유공자에게도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복지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iamky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