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김근철 특파원=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17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를 소집하며 대북 제재의 고삐를 다시 틀어지고 나섰다. 북미간 북핵 협상과 종전선언 논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북한을 압박하는 제재가 느슨해지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의도다. 아울러 18~20일 평양에서 개최되는 3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경협 등의 '속도위반'을 견제하려는 포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안보리 회의는 9월 안보리 의장국인 미국의 니키 헤일리 대사의 긴급 소집 요구로 열렸다. 회의 주제도 '비확산과 북한'으로 정해졌다. 헤일리 대사가 이날 안보리 회의에서 방점을 찍은 메시지는 두가지다. 첫째는 광범위한 대북 제재 위반을 넘어 국제사회에 대북 제재 완화 여론을 선도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경고와 제동이다. 이와함께 헤일리 대사는 모든 유엔 회원국에게 '북미간 협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대북 제재를 완화할 때가 아니다'라며 쐐기를 박았다.
이에따라 발언에 나선 헤일리 대사는 우선 러시아가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대북 제재를 위반하고 있고 이를 은폐하고 있다며 강력히 성토했다. 이어 러시아를 겨냥해 대북 제재 위반과 은폐, 약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며 압박했다.
헤일리 대사는 이와함께 미국과 북한 사이에 '어렵고, 민감한 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를 시작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북미 간 북핵 협상이나 종전 선언 논의를 빌미로 대북 제재망이 느슨해져서는 안된다고 경고한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이날 "전 세계적인 제재는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에 있어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적극 거들고 나섰다. 그는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미국 정부는 오늘 북한에 대한 제재와 러시아의 적극적인 제재 준수 약화 시도를 논의하기 위해 안보리 회의를 소집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어 "우리는 여지껏 그랬듯이 이것들(국제적 제재)을 이행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엔 외교가에선 안보리 북핵 긴급회의가 문재인 대통령과 남북정상회담 대표단의 평양 방문 직전에 열린 것에도 주목하는 분위기다. '우연은 아닌 것 같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로 미국 정부 내에선 남북 정상회담에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 남북 경협 논의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 대북 제재망에 구멍을 내고 국제사회의 결속력을 약화시킬 것을 우려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미 국무부는 지난 1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 그룹 회장 등 한국의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특별 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하는 데 대해 '대북 제재 이행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미국의 소리방송(VOA)에 따르면 대기업 총수들의 방북과 관련한 논평 요청에 대해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모든 유엔 회원국들이 유엔 안보리 결의에 의해 금지된‘특정 분야 제품(sectoral goods)’을 비롯해 유엔 제재를 완전히 이행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또 "모든 나라가 북한의 불법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끝내는 것을 도울 책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대북 제재 완화와 남북 경제협력 논의가 북미간 비핵화 협상의 속도를 앞질러 가는 것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정부의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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