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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과 ‘알리바바 신화’ 함께 일군 창립멤버 17인, 그들은 지금...

기사입력 : 2018년09월14일 11:12

최종수정 : 2018년09월14일 16:54

마윈의 부인 장잉부터 제자 장팡까지
상당수 알리바바 핵심 부서에서 활동

[편집자] 이 기사는 9월 13일 오후 2시51분 프리미엄 뉴스서비스'ANDA'에 먼저 출고됐습니다. 몽골어로 의형제를 뜻하는 'ANDA'는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과 도약, 독자 여러분의 성공적인 자산관리 동반자가 되겠다는 뉴스핌의 약속입니다.

[서울=뉴스핌] 이미래 기자 = 중국 최대 IT 기업 알리바바(阿裏巴巴)의 마윈(馬雲) 창업자 겸 이사회 주석(회장)이 “55세가 되는 내년 생일에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며 은퇴 계획을 발표했다. 그 날은 2019년 9월 10일로 항저우(杭州)시의 한 아파트에서 알리바바가 창립된 지 꼭 20년 되는 날이기도 하다.

알리바바는 1999년 9월 10일 저장성(浙江省) 항저우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창립됐다. 그날 자리에 함께한 사람은 마윈 포함 총 18명. 중국 재계는 이들을 가리켜 ‘스바뤄한(十八邏漢, 십팔나한, 18명의 고승)’이라고 부른다.

마윈과 부인 장잉(張瑛) <사진 = 바이두>

마윈의 군단 '십팔나한' 의 첫번째 일원인 장잉(張瑛)은 익힐 알려진대로 마윈의 대학교 친구이자 아내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마윈과 결혼했다. 이후 몇 번의 사업 실패에도 묵묵히 마윈을 격려하고 응원했다. 1999년 알리바바 창립 이후에는 멤버들의 ‘숙식’을 책임지면서 초창기 사업을 도왔다. 한때 알리바바 그룹 중국 사업부를 총괄했으나, 2004년 자녀 교육과 마윈 내조를 위해 사업에서 손을 뗐다.

장잉은 도시락을 싸주고 스케줄을 직접 관리하면서 아낌없이 마윈을 지원했고 덕분에 마윈은 어려웠던 창립초기 사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 알리바바 직원들은 “점심 혹은 저녁 시간에 마윈 사무실 앞을 지나가면 장잉과 전화통화 하는 마윈의 목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고 전했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지, 과일은 언제 먹을 계획인지, 고기와 채소는 얼마나 먹었는지 ‘보고’했다고 한다.

은퇴 후 장잉은 단 한 번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중국 런민왕(人民網)은 장잉을 가리켜 “수려한 외모는 아니지만 우아하고 품격 있는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쑨퉁위(孫彤宇)와 펑레이(彭蕾) <사진 = 바이두>

쑨퉁위(孫彤宇)는 알리바바 창립 전 마윈과 중국 최초 상업용 웹페이지 차이나 옐로우페이지(黃頁)를 오픈한 동업자다. 사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펑황왕(鳳凰網)은 “차이나 옐로우페이지의 실패가 지금의 알리바바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알리바바 창립 이후 쑨퉁위는 타오바오(淘寶) 개발에 매달렸고 이후 타오타오 대표직을 맡는다. 쑨퉁위는 2008년 알리바바를 그만두고 런던 유학을 떠났는데 이때 업계에서는 마윈과의 불화설이 나돌았다. 

최근에는 쑨퉁위가 ‘전자상거래 계의 떠오르는 별’ 핀둬둬(拼多多)의 시리즈 투자 A펀딩에 참여해 마윈과 또다시 정면으로 맞서는 상황이 됐다. 핀둬둬의 공세에 위기감을 느낀 알리바바는 공동구매 서비스인 ‘핀퇀(拼團)’을 내놓았다.

펑레이(彭蕾)는 쑨퉁위의 아내다. 창업 초기 시장 마케팅, 서비스, HR 등 다양한 업무를 책임졌다. 전 앤트 파이낸셜(螞蟻金服: 마이진푸) 회장이자 현 알리바바 선임 부대표다. 바이자하오(百家號)에 따르면 쑨퉁위가 알리바바를 그만둘 당시 부부는 크게 다투고 이혼했다. 중국 매체들은 “둘은 얼마 안 가 재결합했지만, 마윈과 알리바바에 대한 펑레이의 충성도가 나타난 사건이었다”고 전한다.

최근 알리바바 법인 대표로 임명된 다이산(戴珊) <사진 = 바이두>

최근 알리바바는 마윈의 은퇴 소식을 알리며 “장융(張勇) CEO가 그의 후계자로 지명됐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주목받은 사람은 바로 다이산(戴珊)이다. 장융 CEO 대신 법인 대표에 올라 ‘차기 CEO설’이 흘러나온 것. 현 CEO인 장융과 루자오시(陸兆喜) 모두 CEO 임명 전 법인 대표 자리를 먼저 맡았다.

다이산은 창업 초기 다양한 부서를 직접 개설하고 운영했다. 펑황왕은 “가장 많은 부서와 업무를 담당한 여걸”이라며 “마윈이 평소 여성 경영인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 중 큰 부분은 다이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진젠항(金建杭)은 원래 중국 현지 매체 ‘궈지상바오(國際商報)’의 편집장이었다. 마윈이 차이나 옐로우페이지를 경영할 때 두 사람은 인터뷰를 위해 처음 만났다. 마윈의 차이나 옐로우페이지가 실패로 돌아가고 진젠항이 중국 국무원 산하 대외경제무역합작부(外經貿部) 인터넷사이트 첫 편집장으로 일하게 될 때까지 둘은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1999년 진젠항은 마윈의 알리바바 창업에 가세했고 이후 홍보, 정부 관련 연락 업무, 시장 마케팅 등을 담당했다. 지금은 알리바바 그룹 선임 부대표로 재직중이다.

성이페이(盛壹飛)는 알파벳 a와 웃는 표정을 함께 디자인한 알리바바 로고를 만든 장본인이다 <사진 = 바이두>

성이페이(盛壹飛)는 알파벳 a와 웃는 표정을 형상화한 알리바바 로고를 만든 장본인이다. 로고 속 웃는 모습은 성이페이 자신의 얼굴을 본뜬 것으로 알려졌다. 알파벳 a는 ‘최고’를 뜻한다.

2005년 갑자기 알리페이(Alipay, 支付寶) 팀으로 들어가게 된 성이페이는 알리페이와 타오바오를 구별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는 1개월여 동안 알리페이 페이지 디자인에 매달렸고, 타오바오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한 새로운 사이트를 오픈했다. 지금은 알리페이 이용자 체험팀 총감독을 담당하고 있다.

스위펑(師昱峰)은 원래 중국 중앙기상국(中央氣象局) 직원이었다. 그는 “인터넷은 ‘기회’다”며 “이런 좋은 기회를, 아직 젊은 내가 놓칠 순 없지 않은가?”라고 말하며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마윈의 창업대열에 합류했다. 알리바바 멤버로 창립에 뛰어든 그는 시스템 프로그래밍을 맡아 타오바오 오픈에도 함께했다. 지금은 관리부 선임 총감독을 담당하고 있다.

진위안잉(金媛影)은 스위펑의 아내로 마윈의 제자이기도 하다. 타오바오의 고객 서비스를 담당했고 지금은 기업을 위한 온라인 학교 알리학원(阿裏學院)에서 일하고 있다. 바이자하오는 “그는 9개월에 한번씩 부서를 옮겼다”며 “안 가본 부서가 없을 만큼 업무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고 설명했다.

알리바바는 1999년 9월 10일 저장성(浙江省) 항저우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창립됐다 <사진 = 바이두>

저우웨훙(周悅虹) 역시 마윈의 제자다. 알리바바 초기 엔지니어 중 한 명으로 알리바바 첫 홈페이지를 직접 코딩했다. 하지만 그의 코딩에 여러 번 문제가 발생했고 마윈은 그를 해임했다. 그러자 저우웨이훙은 창립 멤버가 아닌 일반 직원의 마음으로 알리바바에 다시 지원했다. 그는 차곡차곡 실력을 쌓았고 나중에는 알리바바 최고 프로그래머로 평가 받았다. 지금은 이민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팡(蔣芳)도 항저우전자과학기술대학 재학시절 마윈에게 영어를 배웠다. 차이나 옐로우페이지 시절에도 함께한 조력자다. 알리바바 창업 이후 그는 특히 회사문화 및 가치관을 수립하는 데 힘썼다. 지금은 알리바바 청렴팀 및 인사팀 부대표로 일하고 있다.

마윈과 차이충신(蔡崇信) 부대표 <사진 = 바이두>

알리바바 창립 멤버로 가장 마지막에 합류한 사람은 알리바바 선임 부대표 차이충신(蔡崇信)이다.

사실 그는 ‘완전한’ 창립 멤버는 아니다. 창립 멤버 18인 중 유일하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사람이 창립 1개월 만에 나가버렸고, 사람들은 차이충신으로 그 빈자리를 채웠다.

1999년 알리바바가 법인 등록도 마치지 않았던 시기 마윈은 투자유치를 위해 인베스터AB 홍콩지사의 아시아 투자 담당자를 만났다. 그가 바로 차이충신이다. 투자 협상은 무산됐지만 마윈은 대신 차이충신을 얻었다. 그가 알리바바 합류를 원한 것이다.

당시 차이충신의 인베스터AB 연봉은 300만 홍콩달러(약 4억3130만 원)였다. 그러한 그가 월급 500위안(약 8만2500원)를 받고 알리바바로 옮긴 이유는 ‘마윈의 열정과 가능성’ 에 남다른 확신을 가졌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차이충신은 재무책임자(CFO)로서 투자 유치, 법인 설립, 계약서 작성 등을 담당해 알리바바 조직의 기초를 닦았다. 뿐만 아니라 골드만삭스 피델리티 소프트뱅크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해냈다.

이러한 차이충신을 가리켜 마윈은 “내 인생의 은인 4명 중 1명”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밖에 우융밍(吳泳銘) 러우원성(樓文勝) 마장웨이(麻長煒) 한민(韓敏) 셰스황(謝世煌) 라오퉁퉁(饒彤彤)도 마윈과 함께 알리바바의 초창기 사업을 함께 일군 '십팔나한'의 핵심 멤버들이다. 

  

leemr@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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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日 여행객 'K-쌀' 사간다 [세종=뉴스핌] 이정아 기자 = 일본 여행객이 한국을 방문, 한국 쌀을 직접 구매해 들고 나가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일본 내 쌀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밥맛 좋은 한국 쌀'이 대체제로 급부상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3일 <뉴스핌>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상반기 동안 일본 여행객이 한국에서 직접 구매해 일본으로 들고 간 국산 쌀은 3만3694kg로 집계됐다. 일본은 지난 2018년부터 휴대식물 반출 시 수출국 검역증을 의무화한 나라로, 병해충과 기생식물 등 식물위생 문제에 매우 엄격하다. 특히 쌀처럼 가공되지 않은 곡류는 검역 과정이 매우 까다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여행객들의 한국산 쌀 열풍은 지속됐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일본 여행객이 반출한 국산 쌀은 1310kg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상반기에만 무려 25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2024년 1~6월)으로 비교하면 작년 106kg에서 올해 3만3694kg로 약 318배 증가한 셈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일본 여행객들의 '쌀 쇼핑'이 열풍을 불면서 관련 문의가 급증했다"며 "한국쌀이 일본쌀에 비해 맛과 품질이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반출되는 양도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쌀을 화물로 탁송하는 사례도 동반 상승했다. 올해 상반기 기준 화물검역을 통해 일본으로 수출된 국산 쌀은 43만1020kg에 달한다. 지난해 화물 검역 실적이 1.2kg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폭증 상태다. 업계에서는 이번 흐름이 국산 쌀에 대한 일시적 특수로 끝나지 않고 국내에서 정체된 쌀 소비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일본에서 쌀 가격이 두 배 이상 올랐으니 한국에 와서라도 쌀을 구매하는 여행객이 늘어난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다만 일본의 쌀 관세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한국 쌀의 가격만 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국산 쌀의 품질이 높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도 합격점이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영종도=뉴스핌] 윤창빈 기자 = 1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 중국발 여행객들이 입국하고 있다. 2023.03.11 pangbin@newspim.com 정부 역시 이같은 수요에 대응해 일본 관광객을 대상으로 검역제도 안내·홍보에 나서기로 했다. 현재는 농림축산검역본부를 통한 사전신청, 수출검역, 식물검역증 발급, 일본 통관까지 최소 3단계 이상이 요구된다. 다만 한국 쌀을 일본으로 반출할 때 한국에서 식물검역증을 발급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일본 관광객이 일본에 돌아가 쌀을 폐기하는 일이 생기면서 홍보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농식품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오사카 엑스포 현장 방문을 계기로 일본 농림수산성과 예방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 자리에서 쌀 검역 문제가 논의됐다"며 "한국 정부는 일본 여행객이 애써 한국 쌀을 구매한 뒤 일본으로 돌아가 폐기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 홍보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전했다. plum@newspim.com 2025-07-0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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