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창출' 아닌 세대 간 일자리 '싸움'으로
은행권 '이중부담'…"규제완화로 활로 터줘야"
[서울=뉴스핌] 최유리 기자 = 국내 4대 시중은행들이 올해 신규 채용 규모를 늘려 잡았지만, 그만큼 인력 감축에 나섰다. 세대별로 일자리를 뺏고 뺏기는 제로섬 게임에 빠지면서 일자리 창출이라는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일 KB국민은행,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임직원수는 5만9591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6만1754명에서 3.5% 감소했다.
은행별로는 우리은행의 감소폭이 가장 컸다. 지난해 상반기 1만5350명에서 올 상반기 1만4607명으로 4.8% 줄었다. 지난해 9월 1000여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실시한 영향이다.
같은 기간 신한은행이 1만4322명에서 1만3748명으로 4.0% 감소했다. 국민은행은 1만7634명, 하나은행은 1만3602명으로 각각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 2.3% 줄었다.
올해 하반기에도 희망 퇴직으로 인한 인력 감축은 이어질 전망이다. 하나은행이 2년 만에 준정년 특별퇴직을 단행하기로 하는 등 은행권은 희망퇴직을 상시화하며 규모를 늘리는 추세다.
하나은행은 만 40세 이상, 근속기간 만 15년 이상의 임직원 274명을 대상으로 준정년퇴직을 실시한다. 이번 퇴직자중 관리자급 직원은 27명, 책임자급은 181명, 행원급은 66명이다.
나머지 은행들은 아직 하반기 희망퇴직 시기나 규모를 확정짓지 못한 가운데 당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 비대면 채널 확대에 점포 축소가 이어지는 데다 금융당국이 희망퇴을 권고하고 나서면서 규모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5월 "희망퇴직 대상자에게 퇴직금을 많이 주면 10명 퇴직으로 젊은 사람 7명을 채용할 수 있다"며 "은행들이 눈지보지 않고 퇴직금을 올려주고 희망퇴직을 하도록 권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인력 감축이 확대되면서 시중은행들의 신규 채용은 일자리 창출이 아닌 세대 간 파이 싸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은행들이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에 발맞춰 채용 규모를 늘렸지만, 인력 감축 규모를 감안하면 '제로섬'에 가깝기 때문이다.
4대 시중은행은 올 하반기 2000여명의 신규 채용 계획을 세웠다. 은행별로는 국민은행 600명, 신한은행 450명, 하나은행 400명, 우리은행 550명이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의 상반기 채용 규모를 포함하면 연간 2500여명을 뽑게 된다.
은행권 일자리 창출이 공염불에 그치면서 실적 고공행진은 임금 상승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상반기 4대 은행의 1인당 평균 급여는 47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8% 상승했다.
때문에 은행권의 채용 확대가 윗돌 빼서 아랫돌을 괴는 식의 미봉책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선 수천억원의 희망퇴직 비용을 부담하면서 신규 채용을 확대해야 하는 이중부담"이라며 "실상은 세대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문제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관계자는 "디지털 금융이 확대되면서 은행권의 인력 감축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재정을 투입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핀테크 등 규제 완화로 금융 문턱을 낮춰주는 것이 효과적이다"라고 조언했다.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