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인권 위해 온 사회가 나서는데... 법조계만 역행
성폭력 피해자 보호한다는 정부, 뒤에선 예산 삭감?
예산권 쥔 기획재정부도 '딴나라 이야기'
[서울=뉴스핌] 황선중 기자 = 성폭력·아동학대 피해자에 대한 국선 변호사(법률 조력인) 보수를 삭감한다는 법무부 결정에 반발이 거세다.
성폭력·아동학대 피해자 인권을 보호한다고 부르짖는 정부가 정작 피해자에 대한 국선변호인 보수를 줄이면서 시대를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법무부는 한정된 예산 탓에 감액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고, 예산권을 쥔 기획재정부도 '정부의 구호'에 역주행하는 예산배분으로 곱지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피해자 국선변호사(법률 조력인) 제도는 2012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통해 처음 도입됐다. 법률 조력인은 수사 초기부터 성폭력·아동학대 피해자 사건에 개입, 종결될 때까지 피해자에게 전방위적인 법률지원을 한다. 조사 과정에서 의사소통을 중개해주는 진술 조력인이나 피고인·피의자에 대한 최소한의 법률적 지원을 해주는 국선변호사와 다른 개념이다.
실제로 지난 1월 "법률 조력인의 도움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검찰 조사는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법원은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지적 장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법률 조력인은 단순히 법 정보만 제공하는 것이 아닌, 심신이 불안정한 피해자를 안심시키는 역할까지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11일 법무부에 따르면 전국 법률조력인들의 수사·공판절차 참여에 따른 수당은 지난 5월부터 '피해자 국선변호사 보수기준표' 개선안에 의거, 기존 10만∼40만원에서 10만원∼20만원, 서면 제출 수당은 최대 20만원에서 10만원으로 대폭 줄었다.
최근 3년간 피해자 국선변호사 지원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수당 지급 예산은 계속 부족한 상태였다는 게 법무부의 해명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법률 조력인의 도움이 필요한 성폭력 피해자는 2014년 1만3000여명이었지만 지난해에는 약 2만명 정도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법률 조력인의 수는 약 650~67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예산의 추가 증액 없이는 하반기부터 보수 지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수지급 기준 개정은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법조계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단단히 화가 났다. 한국변호사협회는 지난 2일 "성범죄 사건은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하는 사례가 빈번해 별도의 피해자 법률 조력인이 필요하다"며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하는 국선 보수 삭감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애초에 법률조력인들의 업무 피로도가 상당한 상황에서, 보수까지 줄어드니 더욱 우려하고 있다"며 "정부가 성폭력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처럼 입장을 내놨으면서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지원을 줄이는 것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가뜩이나 법률 지원이 절박한 장애인 단체도 아쉬움을 호소했다. 이용섭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홍보실장은 "여성 발달장애인 같은 경우 성폭력을 당하고도 법률 지원을 받지 못해 흐지부지 넘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장애인은 법적인 조력을 받을 권리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법률 조력인 출신 김종웅 법무법인 하민 변호사는 "사회적 약자에게 법률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모두가 공감할 것"이라며 "피해자에게 적합한 법률조력인이 연계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법률 조력인들을 양성하는 방향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법무부 관계자는 "최근 집행유예 판결 등이 늘면서 법률 조력인의 보수를 좌우하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이 상대적으로 줄었다"며 "기획재정부에 예산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sunja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