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비핵화' 모두 날아간 문 대통령의 길었던 하루
24일 오전 10시 '개헌 불발' 이어 오후 10시 '북미정상회담 취소'
[서울=뉴스핌] 정경환 기자 = 말 그대로 '매우 유감'인 하루였을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동안 공들여온 '헌법 개정'과 '한반도 비핵화'가 지난 24일 하루 동안 모두 날아간 때문입니다. 문 대통령으로선 이날 하루동안 두 번이나 "매우 유감"이라고 표명해야만 했던, 아주 길고 긴 하루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문 대통령은 25일 자정 무렵 청와대 관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 긴급회의를 소집, "당혹스럽고 매우 유감"이라고 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 시각으로 지난 24일 오후 10시 50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하겠다고 밝힌 직후입니다.
'한반도 운전자'임을 자부하며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 1년간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해 노심초사, 그야말로 불철주야 달려온 그간의 노력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만 순간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는 모습. <사진=청와대> |
비슷한 상황이 같은 날 오전에도 있었습니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때부터 국민들에게 약속한 개헌이 무산된 것입니다.
국회는 지난 24일 오전 10시 본회의를 열고, 대통령 개헌안에 대한 표결을 시도했지만 끝내 실패했습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청와대 대변인의 입을 빌어 "개헌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면서 "매우 안타깝고 유감"이라고 해야 했습니다.
문 대통령 입장에선 정말이지 힘 빠지는 하루가 길게 이어졌습니다. 개헌도 한반도 비핵화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많이 허탈했을 것 같습니다.
특히 개헌의 경우 그동안 야당의 반대가 계속돼 왔기에 어느 정도 예상 범위 내에 있었다고 해도, 북미정상회담 취소는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상상하기조차 싫었을 수 있구요. 문 대통령 본인도 첫 마디로 "당혹스럽다"고 했죠.
더구나 이날은 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1박 4일간의 강행군을 마다않고 미국을 다녀온 날이었습니다. 이날 새벽에야 서울공항에 도착, 장거리 비행의 피로도 채 가시지 않았을 겁니다. 몸이 천근만근인 상태에서 오전과 오후에 걸쳐 두 번이나 좌절을 맛봐야 했습니다.
이제 다시 일어서야겠지요. 문 대통령의 머리가 복잡합니다. 무엇보다 개헌과 한반도 비핵화 모두 다시금 그 '동력'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부담입니다.
개헌이 무산된 뒤 문 대통령은 "앞으로 새로운 개헌 동력을 만들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만만찮을 앞날에 대한 걱정을 내비쳤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아주 잃진 않은 듯합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느닷없는 뒤통수(?)에도 이날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는 포기할 수도, 미룰 수도 없는 역사적 과제"라며 "정상 간 보다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로 해결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hoa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