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정경환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간 중재에서 한 발 물러서는 모습입니다.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서 문 대통령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강(强) 대 강으로 부딪치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이에서 위축되지는 않을지 우려됩니다.
23일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지난 22일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의 역할은 북한과 미국 사이의 중재를 하는 입장이라기보다는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또 그것이 한반도와 대한민국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미국과 함께 긴밀하게 공조하고 협력하는 관계다"고 말했습니다.
한반도 운전자론을 주창하며 북한과 미국 간 중재 역할에 자신감을 보이던 이전의 문 대통령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지난 17일만 해도 청와대는 북측의 남북고위급회담 일방적 취소로 불거진 북·미 간 불협화음 우려에 대해 "중재자로서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해나가겠다"고 밝혔었죠.
문 대통령으로선 지난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도출한 남북정상회담을 정점으로 좋게만 흘러갈 것 같던 한반도 정세가 급변한 것이 적잖이 당황스러웠을 수 있습니다.
고위급회담 일방 취소,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남측 취재 거부 등 북측과의 마찰에 더해 북·미 간 불협화음까지 노출되면서 부담이 가중됐을 법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각)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백악관을 방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장으로 이동하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더욱이 이로 인해 한미정상회담으로 가는 발걸음이 한층 무거워졌을 문 대통령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쐐기를 박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안 열릴 수도 있다"면서 문 대통령을 압박했습니다.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확정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개최 불발 가능성'을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것도 문 대통령을 바로 옆에 두고 한 말입니다. 한 마디로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열릴 수 있게 잘 해보라'는 말과 다름이 없어 보입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날 한 방송에서 이와 관련, "회담하게 만들고 싶으면 북한을 다시 한 번 설득해서 트럼프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김정은이 확실하게 동의하도록 만들어 놔라라는 뜻"이라며 우리 정부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정 전 장관은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 혹 떼러 갔는데 오히려 부담이 더 커진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1박 4일 강행군을 펼치면서까지 미국을 다녀오는 문 대통령 입장에선 정말 힘이 쭉 빠지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에 가서 만만찮은 '미션'을 확인하고 왔으니, 이제 문 대통령은 더 이상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북한의 닫힌 문을 열고, 그가 '한반도 운전자'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할 때입니다.
이에 문 대통령이 귀국 후 당장 김 위원장과 핫라인 연결을 시도할지가 관심입니다.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은 지난 4월 20일 개통 이후 한 달이 넘게 개점휴업 상태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날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취재와 관련해 그간 거부해왔던 남측 취재진의 방북을 허용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먹구름이 가시지 않고 있는 한반도에 한 줄기 빛이 돼 줄지 주목됩니다.
앞서 문 대통령도 전날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비난한 맥스 선더 한미연합군사훈련이 끝나는 이달 25일 이후 고위급회담을 비롯한 남북 간 대화 재개가 이뤄질 것"이라 말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음을 세상에 보였습니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정착을 향한 경주에서 꿋꿋이 완주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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