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엘렉트라' [사진=LG아트센터] |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다른 사람의 정의는 부정하면서, 너의 정의는 의심하지 않는구나."
누군가를 증오하기 위해, 복수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핑계라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핑계가 '정의'라고 믿는다면,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정당성을 갖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한 명이라도 반발하거나 의문을 제기한다면, 한 번쯤은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 '엘렉트라'는 어떻게 자신이 정의라고 굳게 믿을 수 있었을까.
연극 '엘렉트라'(연출 한태숙, 작가 고연옥)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어머니와 어머니의 정부를 살해하는 엘렉트라의 비극을 담은 작품이다. 사실 딸이 아버지에게 애정을 품고 어머니를 경쟁자로 인식해 반감을 갖는 경향을 가르키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심리학자 칼 융의 정신분석학 용어로 더 익숙한 이름이다.
연극 '엘렉트라' [사진=LG아트센터] |
아가멤논 왕의 딸인 엘렉트라가 아버지를 살해한 어머니 클리탐네스트라를 증오하면서 복수를 하는 고대 그리스 비극을 원작으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2011) '안티고네'(2013)를 작업한 한태숙 연출과 고연옥 작가의 '소포클레스 3부작'의 완결판이다. 이번 작품은 그리스 시대를 벗어나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엘렉트라가 게릴라 전사가 되었으며, 무너진 성전 아래 벙커를 배경으로 한다.
등장 인물들은 각자 자신만의 정의가 존재한다. 클리탐네스트라는 자신의 딸을 산 제물로 바친 아가멤논에게 분노해 그를 죽였다. 엘렉트라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기에 클리탐네스트라를 죽이려 한다. 엘렉트라의 남동생 오레스테스는 평화롭게 살고 싶지만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여동생 크리소테미스는 어머니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로부터 당한 성적 학대를 벗어나기 위해 엘렉트라를 돕는다. 아이기스토스는 자신이 아가멤논보다 더 좋은 왕이라고 생각한다.
각 인물들의 전사(前史)를 알게 되고 그들이 행동하는 이유를 듣다 보면,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인지 점점 헷갈린다. 그들이 논하는 '정의'가 과연 무엇인지 관객들도 함께 고민하게 만든다. 끊임없이 문답하는 과정을 통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정의를 가지고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야할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정의를 부르짖다보니 다소 무겁고 누군가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연극 '엘렉트라' [사진=LG아트센터] |
배우 장영남과 서이숙이 각각 '엘렉트라'와 '클리탐네스트라' 역을 맡아 카리스마 대결을 펼친다. 7년 만에 무대에 돌아온 장영남은 소리치고 분노하고 행동하면서 매우 다이나믹한 열연을 선보인다. 반면 서이숙은 낮은 저음과 묵직함, 무서운 에너지를 내뿜으며 무대 위를 장악한다. 두 사람의 기싸움은 처음부터 끝까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무너진 벙커, 거대한 철조물 등의 무대는 시리아 내전 등을 떠올리게 한다. 이태섭 무대디자이너가 "테러와 전쟁에 의해 무너진 건물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말한 것처럼,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전쟁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고, 폭탄조끼를 입고 자살 테러를 감행하는 게릴라군들의 모습 또한 무엇이 '정의'인지 생각케 한다.
극 중 클리탐네스트라는 엘렉트라에게 "네가 말하는 정의는 다른 사람에게 재앙이야"라고 소리친다. 혹시 우리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있지 않은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할 순간이다. 연극 '엘렉트라'는 5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