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살상 무기 미국에 넘긴 뒤 비참한 최후..김정은 기억에 생생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의 비핵화 해법으로 리비아 식 모델을 거론하면서 15년 전 서방의 승리로 기록됐던 사건이 새삼 화제다.
이어 세간의 관심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반응에 집중됐다. 핵 시설과 미사일을 포기하고 8년 뒤 미국과 유럽의 군사 개입과 무아마르 카다피 전 대통령의 처참한 최후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김 위원장이 볼턴의 발언에 반색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 위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미국이 이라크를 무력 침략하고 사담 후세인 당시 대통령을 체포한 직후 리비아의 카다피 전 대통령은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겠다는 뜻을 선언했다.
이 때까지 핵 무기를 개발하지 못했던 리비아는 관련 장비와 시설을 모두 폐쇄하기로 하고 국제 사회에 이를 공개했다.
아울러 모든 화학 무기와 미사일을 미국의 손에 넘기기로 했고, 이에 따라 보유 중이던 무기가 미국 테네시로 이전됐다.
문제는 카다피 전 대통령의 비참한 최후다. 서방과 군축 합의 후 그는 몇 년간의 번영을 만끽했다. 국제무역이 늘어났고, 해외 투자 자금이 리비아로 유입됐다.
이어 2009년에는 카다피 전 대통령이 UN에서 전세계 질서와 공존을 주제로 연설, 앞서 장기간의 고립을 종료하고 국제사회로 화려하게 복귀하는 듯 했다.
하지만 장밋빛 날들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카다피 정권의 독재에 항거하는 반정부 시위 단체가 봉기했고, 2011년 미국과 유럽의 개입에도 그는 반군에게 체포된 뒤 비참하게 최후를 맞았다.
공교롭게 카다피 전 대통령의 사망은 김 위원장이 북한의 수장에 오르기 불과 몇 개월 전의 일이었다.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한 카다피 전 대통령이 맞았던 비운을 김 위원장이 잊었을 리 없다는 것이 군사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카다피 전 대통령의 최후를 두고 리비아의 군비축소가 실수였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지난 주말 볼턴 보좌관이 북한의 리비아식 비핵화를 언급한 데 주요 외신들의 조명이 집중된 것은 2011년 카다피 전 대통령의 사망 당시 북한의 독재 체제 역시 흡사한 결말을 맞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 이미 김 위원장을 한 차례 긴장시킨 사안이기 때문이다.
30일(현지시각) 2005~2007년 미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을 지낸 로버트 조지프는 내셔널리뷰의 기고를 통해 오늘날 북한은 15년 전 리비아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최첨단 핵 프로그램은 과거 리비아가 포기했던 핵 개발 시설이나 미사일과 차원이 다르고, 북핵 위협은 리비아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심각하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김 위원장이 카다피 전 대통령의 운명을 자처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군사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무부 차관을 맡았던 토니 블링큰은 이날 뉴욕타임즈(NYT)와 인터뷰에서 “중국으로부터 직접 리비아 식 해법이 북한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을 접했다”며 “한편에서 리비아 식 해법을 언급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란 핵 협정 폐기를 주장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김 위원장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볼턴 보좌관 역시 북한의 상황이 15년 전 리비아와 상이하고, 정확히 같은 해법이 동원돼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번 발언을 둘러싸고 회의적인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이날 NYT는 카다피 전 대통령 역시 8년 뒤 자신이 맞을 최후를 짐작했더라면 같은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