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뉴스핌 이고은 기자] "우리는 평범한 주민들이다. 재생에너지는 반대하고 핵에너지는 찬성하고 그런게 아니고..."
15일 김은경 환경부 장관과 경북 영양군 주민들이 모인 자리는 23.1㎡(7평) 남짓의 작은 사무실 공간이었다. 작은 공간 안에 의자가 빼곡하게 들어섰지만 몇몇 주민들은 자리가 없어 뒤쪽에 섰다. 원래는 야외에서 풍력발전기를 시찰하며 현장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으나 날씨가 궂어 실내 공간에서 장관과 대화가 이뤄졌다.
먼저 송재웅 풍력단지 저지 공동대책위원회 사무처장이 운을 뗐다. '프레임' 얘기를 꺼냈다. 송재웅 처장은 "재생에너지를 반대한다고 해서 언론에서 대신 핵에너지가 더 좋다는 근거로 우리 얘기를 이용한 걸 봤다"고 했다.
그는 "여기에는 핵에너지에 반대했던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풍력이 아니라 무분별한 풍력이라고 부른다. 영양에만 9곳의 풍력단지, 기수로는 212기가 추진되고 있다"고 했다.
손을 들어 환경부 장관에게 이야기를 하려는 주민들의 손에는 A4용지 몇십장 정도의 문서가 들려있었다. 꿀벌이 얼마나 스트레스에 취약한지에 대한 미국 학자의 연구, 풍력발전기 소음이 65데시벨 이하면 허가가 나는데 해외의 기준은 이보다 훨씬 낮다는 조사 등이었다.
영양 양구리 풍력발전단지 <사진=이고은 기자> |
꿀벌이 수정을 못해서 양봉피해가 크고, 산사태 위험지역에서 봉우리를 300m 가량 깎고 있어 산 아래 사는 주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그만큼 자연에 대한 이야기도 동일한 무게로 나왔다. 풍력발전기가 들어서고 나서 하늘을 덮을 만큼 많았던 잠자리를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됐다는 것, 푸른 땅벌이 사라졌다는 것, 산위에 세워진 100m 기둥을 매일 보고 살아야 하는 스트레스 등에 대해 말하기 위해 주민들은 앞다퉈 손을 들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상돈 의원(바른미래당)이 영양 양구리 주민들을 국회로 부른 적이 있다. 그때도 한 주민은 서툰 말솜씨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산만 보고 살아왔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산이 깎여나가는 것을 보고, 다른건 몰라도 우리 남은 인생을 걸고 이 산만큼은 지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왔다."
환경부 장관이 들고 온 해결책은 당장 주민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앞으로 발전사업 허가를 낼 때 환경평가를 먼저 실시하고, 주민수용성을 고려해 입지를 선정하겠다는 말이었다. 공사중인 27기의 발전기나 전기위원회 허가가 난 단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그런 점을 김은경 장관도 의식했는지 "당면한 부분을 풀기 위해서는 조금 먼 이야기긴 하다"고 말했다. 김은경 장관은 "일단 주민들과 당사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갈등조정협의회와 대책협의회 등 다양한 기구들을 만들어서 방법을 찾아가겠다"고 덧붙였다.
당장의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주민들은 분노하거나 따지려고 들지 않았다. 장관이 '소통'을 들고나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주민들은 사업자와 지자체장이 풍력발전단지 입지를 결정하고 추진하면서 주민의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강조했다. 몇몇 주민들은 "우리를 개돼지 취급한다"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했다. 하지만 소통과정에서 주민들이 답답함과 분노를 또다시 느끼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문재인 정부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세우고, 2016년 기준 전체 발전량의 7%에 불과한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빠른 속도로 추진하던 신재생에너지 확대 사업이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친환경에너지가 오히려 환경을 파괴한다는 주민들의 목소리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들고 나왔던 문재인 정부로서는 가장 어려운 딜레마를 만났다.
[뉴스핌 Newspim] 이고은 기자 (goe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