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윤청 기자] “겨울을 견딘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 더 달고 단단하다.”
사람과 관계에 주목해 온 임순례(58) 감독이 이번에는 음식으로 관객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오랜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잘 먹고 잘 사는’ 삶을 살아가 보자고 말한다.
임순례 감독의 신작 ‘리틀포레스트’가 지난달 28일 베일을 벗었다.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시험, 연애, 취업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혜원(김태리)이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만화와 앞서 개봉한 일본 영화와 달리 한국적 정서와 색을 가득 입혔다.
“원작이나 일본 영화 팬들이 많아서 차별성을 놓고 많이 고민했어요. 쉽지 않더라고요. 정서, 문화 모든 게 너무 일본스러워서 한국으로 가져오는 게 만만치 않았던 거죠. 시나리오 작가와 우리만의 전략, 또 어떤 걸 취하고 버릴지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어요. 다행히 초고가 상당히 좋았어요. 나머지 부분은 연출이나 배우가 채우면 됐고요. 사실 모두가 열광할 소재가 아니니까 손익분기점만 넘자는 소박한 바람으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좋아해 줘서 다행이죠. 무엇보다 제가 준 것보다 더 많은 걸 찾아가셔서 감사하고요.”
임순례 감독의 말처럼 ‘리틀포레스트’는 모두가 열광할 만한 소재가 아니다. 임 감독이 처음부터 타깃층을 명확히 잡고 간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메뉴, 인테리어, 소품부터 대사, 상황 등 많은 부분을 2030 여성들에 맞춰갔다. 가장 큰 도움을 준 건 함께한 스태프들이었다.
“스태프들이 상당히 젊어요. 그래서 많이 이야기를 들었죠. 엔딩이나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방식이 그 과정에서 바뀐 거예요. 전 학교 앞에 찾아가서 이별을 통보해야 한다고 하니까 스태프들이 구세대 방식이라고 해서 바꿨죠. 하하. 엔딩도 원작 속 마을 회관 장면을 몇 번 어필했거든요. 근데 ‘6시 내 고향’이냐고 해서(웃음)…. 그 친구들이 별로라고 한 건 다 걷어냈어요. 트랜드에 맞춰야 할 필요가 있었기에 최대한 많이 듣고 수용했죠. 젊은 스태프들이 우리 관객을 미리 대변하는 거고 그 친구들이 생각과 감성이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반면 임순례 감독만이 도와줄 수 있었던 부분도 있다. 시골(?) 생활이다. 알려졌다시피 ‘리틀포레스트’는 1년 동안 경북 의성에서 네 번의 크랭크인과 크랭크업을 반복했다. 대부분의 배우, 스태프들에게 시골은 낯선 공간이었지만, 임 감독에게는 예외였다. 전라도, 경상도를 거쳐 현재 경기도 양평까지, 그에게는 그간 자연을 벗 삼아 산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사계절의 가장 아름다운 면을 체감하고 있었고 농사나 농작물 등을 잘 알고 있잖아요. 그런 부분이 촬영에 상당한 도움이 됐죠. 시골에 머무는 이유요? 시골 감성이 있나 봐요. 자연을 그리워하고 자연과 봐야 행복한 인자도 있나?(웃음) 근데 결정적인 이유는 개 때문이에요. 늘 동물과 소통했는데 이 일을 하면서 함께하지 못했죠. 허전하고 삶의 재미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어렵게 다시 개를 키우게 됐고, 개에게 조금 더 좋은 조건을 주기 위해 양평에 자리 잡게 됐죠.”
물론 얖서 말했듯 임순례 감독 특유의 사람,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놓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혜원과 친구들, 혜원과 엄마(문소리) 이야기가 그렇다. 특히 임 감독은 분량에 관계없이 모녀의 관계에 특별히 신경을 기울였다.
“엄마와 딸 간의 관계는 항상 좀 특별한 것 같아요. 서로에게 짜증을 가장 많이 내면서도 말을 안해도 품어주는 부분이 있는 거죠. 친구들만큼이나 엄마와 혜원의 관계가 영화를 관통해요. 혜원은 엄마가 자신을 떠나 버린 상처를 계속 안고 있었고, 돌아와서 그 상처를 건강하게 털어버렸죠. 비중, 분량을 떠나서 굉장히 중요한 중심축이었고 그래서 톤이나 연기를 많이 신경 썼고요. 당연히 우려되는 부분도 있었는데 다행히 김태리 씨와 문소리 씨가 너무 잘해줬죠.”
‘리틀포레스트’가 개봉 이후 꾸준히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 ‘힐링’에 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었다. 힐링은 최근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각광 받는 콘텐츠. 그래서 임순례 감독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지금의 우리가 힐링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다들 너무 힘들게 살아요. 도시는 도시대로, 농촌은 농촌대로. 제가 유일하게 보는 예능이 ‘윤식당’인데 이번 스페인 편을 보니 주민들이 여유가 있더라고요. 조그만 섬에서 다들 자기 생활을 행복하게 꾸려가는 거예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가족과 여유를 즐기면서, 인생을 인생답게 사는 거죠. 우리에게도 (이)효리 씨가 있지만(웃음), 사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다들 꿈꾸긴 하지만 쉽지 않죠. 그러다 보니 힐링 프로로 대리 만족을 하는 게 아닐까 해요. 너무 각박하고 바쁘고 힘드니까. ‘리틀포레스트’도 그런 힐링을 줄 수 있었으면 해요.”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윤청 기자 (deepblu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