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범준 기자]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정시 지원 전략을 짜느라 한창인 요즘. 수능 점수가 가고자 하는 대학의 합격선과 비슷할 경우 뜻밖에 '내신'이 당락을 가르기도 하면서 학생부 성적에 대한 관심이 쏠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1990년대로 추정되는 한 학생의 생활기록부.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
현재 고등학교 내신은 등급제로 실시되고 있다. 교육부는 기존의 절대평가 방식이 학생들의 성적을 부풀린다며 지난 2008학년도부터 상대평가인 내신 9등급제를 도입했다. 이후 절대평가로 환원이 논의되면서 'ABCDE' 5등급이 검토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상대평가 체제다.
기존 절대평가 방식은 '수우미양가'로 분류하는 평어였다. 과목에서 90점 이상을 받으면 '수', 80점 이상은 '우', 70점 이상은 '미', 60점 이상은 '양', 그리고 나머지 60점 미만은 '가'로 표기됐다.
1988년생(대학 07학번)까진 '수우미양가'가 더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익숙하면서도 낯설 수 있다.
오래전부터 남들이 해오던대로 따라서 으레 수니 우니 해왔지만, '가나다라마'도 '12345'도 아니고 왜 하필 '수우미양가'일까. 한자어 같긴 한데 무슨 뜻인 걸까.
수우미양가 평가 방식은 지난 1910~1945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국민학교에서 쓰던 학적부에서 비롯된 일제 잔재다. 광복 후 생활기록부라는 이름으로 그대로 옮겨오면서 계속 사용됐다는 것.
용어의 기원은 일본 전국(戰國)시대에 사무라이(武士)들이 적의 목·코·귀 등을 베어오는 수량에 따라 '수우양가'로 등급을 매긴 것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어원에 대한 논란과는 다르게, '수우미양가' 각각의 뜻은 대단히 아름답고도 사려깊음이 느껴진다.
먼저 수(秀)는 '빼어날 수'로, 가장 뛰어나고 훌륭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優)는 '넉넉할 우'로, 넉넉하거나 뛰어남을 뜻한다. 흔히 우수하다고 할 때 쓰이는 우 자다.
미(美)는 '아름다울 미'로 훌륭하고 좋다는 의미며, 양(良)은 '어질 양'으로 역시 괜찮고 좋다는 뜻이다. 양질의 제품과 같이 활용되는 양 자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가(可)다. 가는 '옳을 가'로 옳다는 뜻 뿐만 아니라 좋다, 가능하다, 허락하다 등의 의미도 담겨 있다. 학업성취도가 가장 낮은 '꼴찌' 학생들에게 낙제 대신 가능성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것.
일제 잔재 청산 문제로 '수우미양가'는 순화될 필요는 있지만, 그 의미와 옛 사람의 지혜는 계승할 만하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정시 전형을 앞두고 만족하지 못할 수능 점수와 학생부 점수 때문에 스스로 비관하는 수험생들, 그런 자녀를 몰아세우는 학부모들이 있을 것이다.
대신 '할 수 있다'면서 가능성을 심어주는 것은 어떨까.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은 채우면 된다. '수우미양가'에 따르면 나쁜 학생은 없다. 모두 훌륭하고 옳은 학생일 뿐이다.
[뉴스핌 Newspim] 김범준 기자 (nunc@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