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포항은 '한 걸음 빠른' 복구의 손길이 시급
[포항=뉴스핌 김범준 기자] 규모 5.4 강진이 발생한 다음날인 16일, 포항은 스산했다.
경북 포항시청 재난안전상황실에서 나와 올려다본 청명한 가을 하늘이 유독 어색하게 느껴졌다. 택시에 올라 제일 먼저 부른 목적지는 포항 북구 포항여자고등학교. 이내 취재 기자임을 눈치 챈 택시 기사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오늘 거리에 유독 사람들이 없고 한산하네예. 아무리 평일 낮이어도 (평소엔) 이 정도는 아닌데, 다들 지진에 겁먹고 집 안에 들어가 있나봅니다. 하긴 어제 전 차에 있는데도 (운행 중에) 갑자기 남정네 서너명이 뒤에서 차를 밀고 흔들 듯 들썩거리더라고요"
"흥해(읍 일대)가 오래된 건물도 많고 피해가 크지만, 시내에도 꽤 있습니다. 북구 양덕동은 서울로 말하자면 강남과 같은 신도시인데 새 아파트 벽에 금도 가고예. 장성동 일대는 한동대 학생아들이 많이 사는 원룸촌인데 죄다 1층을 비운 (필로티)구조라 기둥이 부서지고 찌그러지고 완전히 난리도 아닙니더. 꼭 한번 가 보이소"
이윽고 도착한 포항여고는 고요했다. 학교 정문에는 이날 수능이 치러질(뻔했던) 고사장임을 알려주는 현수막과 안내문이 아직도 붙어 있었다. 정문 옆에 세워져 있는 '지진 옥외대피소' 안내 팻말이 유독 눈에 밟혔다.
교실은 차갑고 텅 비어 있었다. 지진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날 수능을 한창 치르는 수험생들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을 게다.
밖으로 나와 건물 뒤 무너졌던 담장 쪽으로 가봤다. 여전히 바닥에 떨어져 있는 벽면 파편들은 지진으로 긴박했던 순간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한 학생은 "어떤 학교는 벽에 금도 갔는데 아직 이렇다 할 복구 작업은 없다고 해요. 다음 주가 돼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라며 "이래 가지고 (고3) 언니랑 부모님 모두 제대로 수능이 치러질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해요. 대학 가려다가 죽을 순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다시 택시를 잡고 북구 장성동으로 향했다. 두번째 택시 기사 역시 포항시민들의 모습을 전해줬다.
"노인들이 윗집에서 조금만 쿵쿵거려도 '또 지진이 발생했나'하며 놀랜답니다"라며 "혼자 있으면 무서우니까, 낮에 아파트 안 경로당에 삼삼오여 모여 있다가 저녁에 자녀들이 귀가하면 그때서야 집에 돌아간다고들 하더라고요"
장성동에 도착한 뒤 물어물어 피해 원룸을 찾아갔다. A원룸은 '위험!'이라는 빨간 딱지와 출입을 금하는 노란 폴리스라인이 붙어 있었다. 필로티 기둥 벽면이 부서져 철근이 훤히 드러난 모습을 가까이서 보니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아찔한 기분이다.
마침 현장에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건물을 바라보는 건물주 김모씨가 있었다. 김씨의 한숨섞인 이야기는 작금의 마음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혹시 모를 더 큰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한시라도 빨리 보강작업 공사를 하고 싶은데, 시청에서 '절차' 문제를 들면서 허가가 나기 전까지 (작업을)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이게 말이 돼요? 언제가 될 지 기약도 없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세입자들은 다 대피시켰죠. 당분간 세를 받지 못하겠지만, 더 큰 문제는 시에서 철거명령이 내려지는 거에요. 물어보니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하네요. 그럼 전 어떡해야 합니까. 그냥 망해야 합니까"
근처에 더 심각하다는 B원룸을 찾아가 봤다. 이 건물 필로티 기둥은 이미 기둥이 아니었다. 철근이 엿가락처럼 제멋대로 구부러지고 휘어져 있었다. 지금까지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게 기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다행이 B원룸에는 공사 허가가 났나 보다. 마침 도착한 지게차가 H빔 철근을 부지런히 옮기며 보강작업을 벌였다.
현장에 나온 대한건축사협회 소속 한 공사 감리자는 "건물이 이미 옆으로 20cm 가량 누웠다. 지금까지 아슬아슬하게라도 버티고 있는 게 다행이다. 임시방편 작업이지만, 일단은 서둘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한 일식집은 아예 건물 한쪽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말 그대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지나가는 주민들과 차량은 이따금씩 통행을 멈추고서 힐끗 쳐다보곤 했다. 남 일 같지 않다는 걱정어린 시선들이었다.
정부는 포항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하는 절차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하지만 같은 북구라도 흥해읍과 달리 이곳 장성동·양덕동 일대는 정비가 더뎠다. 거리 곳곳에는 붕괴의 잔해들이 아직도 방치돼 있었다. 지금의 포항은 '한 걸음 빠른' 복구의 손길이 시급하다.
[뉴스핌 Newspim] 김범준 기자 (nunc@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