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흔히 보이는 것들로 뫼비우스적, 그 이상의 상상 여행을 하려 한다. 주변의 사물들엔 저마다 독특한 내력이 숨어 있고 어떻게 빚느냐에 따라 보석이 되기도 하고 나침판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출발한 여행의 과정에 어떤 빛깔의 풍경이 나타날지, 그 끝이 어디까지 다다를지 필자 자신도 설레인다. 인문학의 시대라고 하는데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 메타적 성찰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사물과 풍경, 시대와 인문을 두루 관통하면서 색다르면서도 유익한 여행을 떠나려 한다.
남미에 <엘 콘도르 파사>가 있다고 한다면 북미엔 <체로키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있다. 체로키라는 말을 뺀 <어메이징 그레이스>도 유명하며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좋아하다가 <체로키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알게 된 후 그 곡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싸이먼 앤 카펑클의 노래로만 알다가 잉카인들의 혼이 담긴 엘 콘도르 파사를 알게 된 후 마음을 빼앗겼듯.
메이플라워호가 영국의 청교도인 등을 싣고 북미에 도착한 해가 1620년. 통상 그것을 미국의 기원으로 삼는데 이미 그 이전에 스페인과 프랑스, 영국의 또다른 배 등의 진출이 있었다. 물론 콜럼버스의 발견 이후이다. 메이플라워 호 이야기가 유명한 것은 그 배에 탄 청교도인들의 종교가 미국의 건국 신화로 삼기에 유리해서이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의 일종인 청교도인들 역시 스스로에 대해선 종교적 성스러움으로 대했겠지만 바깥에 대해선 전혀 다른 태도를 취했다. 도착한 땅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에 대해서 말이다.
알래스카에서 캐나다 대륙까지 치면 북미가 워낙 광대하기에 인디언들의 부족들도 다양했다. 체로키 인디언은 그 중의 하나로 다소 특이한 점을 보인다. 문자를 만들어 채로키 어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인디언들이 멸종되거나 보호 구역에 갇혔지만 체로키 인디언들은 부분적으로나마 문명화 내지 서구화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 지금 그들이 주로 거주하는 오클라호마 주엔 체로키 정부가 있고 청사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체로키 인디언들의 역사 또한 또다른 인디언들의 비장한 최후 못지 않게 눈물 아니면 볼 수 없다.
1838년. 체로키 인디언들이 살던 조지아 주에서 인디언의 강제 이주 명령이 떨어진다. 그 지역에서 금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인에 의한 골드 러시가 일어난 것이다. 그곳에 살던 17000 명 정도의 체로키 인디언들은 2000 킬로미터를 걸어 지금의 오클라호마에 다다른다. 그 과정에서 4000 여명의 인디언들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는다. 나머지들도 참혹한 고난을 당했다. 그 길이 눈물의 길이라고 불린다.
실은 눈물 이상의 길일 것이다. 피의 길. 죽음의 길. 억울한 희생의 길. 처절한 원한의 길, 말도 안되는 부조리한 길. 가해자 미국에 대한 응징의 길 등등 그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가 닿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그 눈물의 길을 어떻게 인지할까.
독일은 홀로코스트에 대해 반성을 한다. 저지른 죄에 대해 속죄할 길이 본질적으로 없는 것이지만 최선을 다함으로써 국가의 기본에 노력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하이델베르그에 <철학자의 길>이 있다. 헤겔, 야스퍼스, 하이데거 같은 철학자들이 산책하며 사유를 길어올린 길이다. 만약 독일이 유대인들에 대한 죄악을 외면하거나 적당히 뭉개버리면 그 철학자의 길마저 무색해질 것이다. 타인에 대해 죄를 저지른 상태에서 철학자의 길이라니! 조롱 당함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독일을 띄우는 것은 아니지만 홀로코스트에 대한 독일의 사후 대책으로 인해 독일의 철학자의 길도 그 가치를 보존할 수 있었다.
2차대전 때 독일과 같은 전범국인 일본은 독일처럼 반성은커녕 적반하장으로 나아간다. 미국은 독일과 일본 사이의 어느 쯤에 있을까.
체로키 인디언의 눈물의 길이 그래서 더욱 피눈물의 길로 보이고 그것으로 상징되는 미국 내 인디언들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처연함과 부조리로 얼룩진다. 체로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체로키 인디언들이 그 눈물의 길을 걸으면서 부른 노래이다.
그 눈물의 길과 견줄 성격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도 비슷한 길이 있었다. 1937년.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명령에 의해 강제 이주를 당한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실려 먼 중앙아시아 땅에 내던져진다. 우수리스크의 고려인 문화센터엔 그들의 고통과 죽음, 지옥 같은 현장의 기록들이 진하게 전시되어 있다. 연해주 고려인들의 가슴 속에 담긴 노래는 아리랑이었다.
체로키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아리랑은 왠지 나에게는 제법 비슷한 정서로 와닿는다.
역사를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아메리카 인디언과 한국 사람들이 만난다고 한다. 아시아 초원의 몽골로이드가 베링 해협이 물에 잠기기 전의 육교인 시절에 아메리카로 건너갔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그 후로도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갔다는 말 등등이 있다. 아메리카의 인디언과 연해주 고려인들은 혈통적으로 비슷할 것이다.
체로키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아리랑에 얽힌 사연들에서 다른 점을 굳이 찾으라면 내게 보이는 것이 있다. 연해주 고려인의 강제이주 속에서 고려인들의 가슴과 하나가 된 아리랑은 세월이 흘러 하나의 전환점을 만난다. 중앙아시아 등지로 퍼져 고난 속에 버틴 그들 중의 성공한 일부는 다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귀환한다. 주로 3대나 4대들인데 선조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1937년이나 그 이전의 연해주 곳곳의 풍물과 인심, 사람들에 대해 그들은 선조들에게 뼈저리도록 들었을 것이다. 그곳으로 가서 제법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체로키 어메이징 그레이스엔 이런 귀환이 없다. 인디언들은 귀환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 부분적으로 그런 말을 쓸 수도 있겠지만 미국에서 인디언들은 성립 불가능한 존재들이다. 체로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그 절연, 잔혹, 부조리 등등의 검은 심연이 배어 있어 노래라기보다는 죽음의 멜로디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런 노래를 뭐라고 해야 하나.
레퀴엠. 그것은 죽은 자들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산 사람들이 작곡해 부르는 것이다. 장엄하기 그지없지만 체로키 어메이징 그레이스에 서린 심연과는 거리가 멀다.
무가는 억울하게 희생된 자들을 위해 무당이 부르는 노래이다. 레퀴엠과 비슷하다. 노래 중에 슬픔의 극단까지 간 <그루미 선데이>도 고통스런 시절 속의 산 사람들의 노래이다. 이렇듯 슬픔의 정수라는 노래들, 이승을 너머 저승을 위하거나 향한 노래들을 찾아봐도 체로키 어메이징 그레이스와는 다르다.
엘 콘도르 파사와 체로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그런 면에서 동일한 심연을 지니고 있다. 두 노래 모두 억울하게 희생 당한 존재들에 의해 불려졌으며 그들의 사연을 그들의 부재 속에 담고 있다. 그들은 피리를 연주하며 자유의 노래를 불렀고 눈물의 길을 걸으며 고통의 영가를 불렀다.
존재가 멸절된 후에 노래로만 남은 것. 애절하게 아름답다한들 그 주인들에게 닿을 수 없는 노래.
그것은 차라리 화석일지도 모른다. 섬뜩한 심연을 품고 있는 음악 화석. 아메리카는 그 나름대로 역사가 깊은 만큼 무수한 화석들을 지니고 있지만 문명을 발달시켰다는 근현대에서도 인류에게 끝없이 뭔가를 환기시키는 검은 화석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명훈(소설 ‘작약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