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공식화, 국민연금도 로드맵 마련키로
한국은 기업오너십 견제...관치금융이 연기금·보험사 통해 기업 지배
[ 뉴스핌=한기진 기자 ] “반정부 성향의 000이사 연임 반대한다. A기금이 추천한 이사와 감사를 올려라. B보험사도 임원 후보 낸다. 그러면 C 투자자문사도 별도 후보 내겠다. 회사 장기 비전보다 당장 주가에 악영향 주는 신 사업하지 말라. 회사는 경쟁사에 노출되면 안 되는 미공개 정보도 공개하라.”
2019년 모 상장 기업의 정기주주총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장면이다. 문재인 정부가 새로운 주주 권리장전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를 국정과제로 택하면서 가능해졌다. 기관투자자가 기업 경영에 적극적인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그 범위를 확대하고 권한도 주어진다. 기업들은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가 당초 취지인 '주주행동주의'가 아닌 ‘연금사회주의’로 변질될까 두렵다”는 반응이다.
<자료=한국기업지배구조원> |
이 기준의 세부내용은 금융위원회가 의결권 자문서비스업체인 한국기업지배구조연구원(CGS), 학계, 주요 자산운용사 등으로 구성된 제정위원회를 통해 작년에 내놨다. 매우 포괄적이면서 구체적으로 ▲ 정책수립 ▲ 공시 주주와 이해상출 해결 정책 ▲ 모니터링 경영관여 ▲ 의결권 행사 정책 ▲ 리더십 점검 및 감시 ▲ 역량 및 전문성 확보 등이 내용이다. 주로 자산운용사, 사모펀드 등 기관투자자 40여곳이 참여했다.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는 “일본, 영국의 제도를 뒤섞은 데다가 선례가 없는 내용까지 포함해 전혀 한국적이지 않다”라는 비판을 받는다.
핵심적인 부분에서 주주가 관여할 수 있는 기준이 일본과 영국은 ‘주주평등대우원칙’ 등 추상적이다. 기업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서로 노력해 건설적인 대화를 해야지, 미공개정보를 받는데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다.
반면 한국형 코드는 세부적으로 경영에 간섭하도록 돼 있어 미공개정보까지 유출되도록 했다. 투자회사는 경영전략, 재무구조와 성과, 지배구조, 환경·사회 측면에서 추가 정보와 자료 요구, 이사 감사후보 추천, 이사 연임 반대, 주주소송 등이 자세하게 열거돼 있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형 코드는 강한 오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주인없는 회사 문제를 해결하는 영국식의 코드를 적용한 것으로, 지배구조를 손대려 하는 것”이라며 “경영자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모니터링과 경영관여의 범위도 한국이 (일본, 영국 보다) 가장 넓고 세밀하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공단은 최근 스튜어드십 코드를 만들기 위한 중장기 로드맵 구축에 들어갔다. <사진=국민연금공단> |
기업들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점은 정부의 영향을 받는 연기금이 기업의 오너십에 손대는 이른바 ‘연금 사회주의’다. 국민연금은 10대 그룹 상장사 10곳중 7곳의 지분 5%를 넘게 갖고 있는 주요주주로, 기업 경영에 깊숙이 관여할 수 있다. 특히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그룹은 10% 가량 보유한 1, 2대 주주다.
이런 우려로 국민연금은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위원회에 불참했다. 그러나 지난 5일 ‘책임투자와 스튜어드십 코드에 관한 연구’ 용역을 발주하고 국민연금판 코드 마련에 착수했다. ▲ 투자회사(지분투자 기업)의 중장기 가치제고를 위해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방향성을 정리하고 ▲ 책임투자 활성화를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 후 국민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이 나오면 기금운용위원회 보고해 심의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우정사업본부, 군인공제회 등 연기금과 보험사들의 기준이 된다.
지인엽 동국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국가가 시장에 개입할 여지로 정치적 견해가 강제될 수 있다”면서 “관치금융이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오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금융당국이 점검주체가 될 수 있어 우려된다”고 했다.
[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