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지은 기자] 정의를, 진실을 찾기 위해, 마음의 소리를 전하고 숨을 쉬기 위한 사람들이 법정에 올라섰다. 같은 곳에서 같은 목표를 가지고 만났지만 결국에는 대립한다. 바로 보도지침, 혹은 보도협조사항으로 인해.
연극 ‘보도지침’은 제 5공화국 시절인 1986년 전두환 정권 당시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가 월간 ‘말’지에 ‘보도지침’ 584건을 폭로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됐다. 당시 법정과 기자회견장에서 나왔던 말들이 연극의 대사로 옮겨졌다.
이번 사건을 폭로한 김주언 기자는 김주혁(봉태규‧김경수‧이형훈)으로, 월간 ‘말’지를 세상에 공개한 김종배 편집장은 김정배(고상호‧박정원‧기세중)로, 이들의 재판을 변호했던 한승헌 변호사는 황승욱(박정표‧박유덕)이라는 캐릭터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이들과 대립하는 검사 최돈결(남윤호‧안재영)까지.
연극은 김주혁과 김정배의 기자회견으로 시작된다. 공연의 특징상, 모든 카메라와 휴대전화는 꺼낼 수 없게 됐지만, ‘보도지침’의 기자회견 장면에서는 다르다. 실제 기자회견을 하는 것처럼, 관객은 카메라를 들고 그들의 모습을 담을 수 있어 기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허구 또한 섞여있다. 김주혁과 김정배, 그리고 한승헌, 최돈결은 대학시절 연극 동아리를 통해 뜨거웠던 청춘 시절을 함께 한 친구들로 설정됐다. 그러다보니 무대의 연출은 순식간에 바뀐다.
법정이 곧 대학교 연극 동아리실이 되고, 광장이 되고, 이들의 ‘독백’을 고백하는 극장이 되기도 한다. 네 명의 주인공들은 연극으로 하나가 됐다가 하나의 공연으로 인해 각자의 길을 걷게 되고, 곧 보도지침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관계가 된다.
김주혁으로 분한 봉태규는 이번 사건의 원인인 팩스의 진상을 밝히는 인물이다. 엄청난 강단이 필요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어느 장면에서도 흥분하거나, 감정에 휘말리는 일 없이 차분한 연기를 이어간다. 정확히 ‘팩트’만 짚어내는 기자로 완벽히 분했다.
그와 함께 보도지침을 월간지에 폭로하게 도와준 편집장을 맡은 기세중은 능청스러운 연기와 표정으로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들 중에서 무게의 균형을 잡고 가는 것은 박정표이다.
박정표는 신문사로 날아온 정부의 지침사항을 하나씩 읽으며 당시 암울했던 상황을 실감나게 재연한다. 그리고 봉태규, 기세중, 박정표는 가장 진실 된 ‘독백’으로 강한 울림을 선사한다. 진실을 밝히려는 이들의 처절한 몸부림에 객석 곳곳에서는 눈물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배우들 역시, 연기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표현한다.
실제 보도지침을 폭로한 언론인들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지만, 9년 후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이 사건은 보도지침에 인해 보도되지 않았다. 연극의 결말은 실제 사건과 조금은 다르게 흘러간다.
언론인들은 진실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보도지침’을 세상에 공개했지만, 연극 ‘보도지침’에 서는 정해진 답이란 것은 없다. 이들의 진심을 한없이 표현해주는 독백의 대사들이 연극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
한편 연극 ‘보도지침’은 오는 6월 11일까지 대학로 TOM(티오엠) 2관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만 13세 이상 관람가.
[뉴스핌 Newspim] 이지은 기자 (alice09@newspim.com)·사진=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