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에서는 배 농사를 짓는 임관채, 임선국 부자와 며느리 에린 진 오라일리 씨의 일상을 소개한다. <사진=‘인간극장’ 캡처> |
[뉴스핌=정상호 기자] KBS 1TV ‘인간극장’은 1~5일 ‘배꽃 필 무렵’ 편을 방송한다.
이날 ‘인간극장’에서는 배 농사를 짓는 임관채, 임선국 부자와 며느리 에린 진 오라일리 씨의 일상을 소개한다.
바야흐로 배꽃이 피는 계절. 과수원 가득 하얀 배꽃이 만발했는데 이 그림 같은 정경이 가장 두렵다는 사나이가 있다. 바로 8년 차 농부, 임선국(36) 씨다. 어린 시절, 어린이날은 물론, 친구들과 놀 시간마저 빼앗아갔던 배 밭. 그래서 배도, 배꽃도 싫었단다. 죽어도 농사는 짓지 않겠다던 선국 씨가 다시 배 밭으로 돌아왔다.
일하는 아내를 대신해 5살, 6개월 두 아이까지 업고 배 밭으로 향하는 선국 씨에게 출근길을 전쟁이지만, 진짜 전쟁은 배 밭에서 벌어진다.
선국 씨의 아버지 임관채(63) 씨는 약 치는 것이며, 기계를 만지는 것이며 마음에 드는 게 없다면서 선국 씨를 밭으로 보내놓고도 못 미더워 쪼르르 달려와 감시하고야 만다. 든든한 남편, 좋은 아버지 그리고 인정받는 농부가 되고 싶은 선국 씨이지만 그 길이 영 쉽지 않다.
아내 에린 진 오라일리(36)도 덩달아 농부의 아내로 살고 있다. 캐나다에서 올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농부의 아내 그리고 맏며느리의 삶에 지금, 에린 씨는 적응 중이다.
종일 밭에서 고생했을 남편을 위해 서툰 솜씨로 김밥을 말고 쉬는 날이면 시댁을 드나들며 시어머니의 일손을 돕는다.
그런 며느리가 예뻐, 시어머니 강선임(59) 씨는 요리 선생님이 관채 씨는 베이비시터가 되어줬다.
사람의 손으로 수만 송이 배꽃에 일일이 꽃가루를 묻혀야 하는 배 농사. 배꽃이 흐드러지면, 온 가족이 배 밭으로 향한다. 다섯 살 무렵, 아버지의 손을 잡고 나무를 심었던 그 밭에 선국 씨는 두 아이의 이름으로 나무를 심는다. 4대가 머무는 과수원, 그곳에 봄이 무르익고 있다.
◆1년에 단 일주일! 배꽃의 계절이 돌아왔다
봄 하면 떠오르는 꽃 무엇일까.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드 저마다 상춘객의 가슴을 흔들어놓는데, 임선국 씨는 ‘벚꽃보다는 배꽃’이라고 외친다. 시원하게 밀어버린 머리에 농부 유니폼까지 갖춰 입은 배 농사꾼. 오늘도 힙합 노래와 함께 과수원으로 출근한다.
휴일은 물론 어린이날까지 삽자루를 들어야 했던 농부의 아들, 선국 씨. 친구들과 야구 경기를 보러 가기로 했다가, 구경은커녕 아버지에게 야단만 잔뜩 듣고 배에 봉지를 싸러 간 적도 있었다. 죽어도 농사만은 짓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선국 씨. 그가 돌고 돌아, 배 밭으로 돌아왔다.
일주일에 7일. 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아버지의 말을 따라 매일 광주와 나주를 오가는 선국 씨. 어렸을 때부터 해온 농사일이건만,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 없다. 농약 뿌리는 기계는 내 손만 닿았다 하면 시동이 안 걸리고, 왜 중요한 날에는 꼭 비가 오는지… 한 걸음 다가가면 두 걸음 멀어지는 농사일에 속상하다. 그런데 여기, 농사일보다 더 어려운 게 있다.
◆회장님이 지켜보고 있다!
과수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뿌연 약을 뿌리는 선국 씨. 그 모습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아버지 임관채 씨다. 배 밭의 회장님이다. 웬만한 농기계 수리는 식은 죽 먹기, 혼자서 밭 세 개 정도는 거뜬한 현역 농사꾼. 40년간 새벽이슬 맞으며 밭을 일궈 두 아들, 대학공부까지 시켰다. 큰아들은 공무원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도시계획과를, 둘째 아들은 농사를 이어갔으면 싶어 농업대학교를 보냈는데, 엉뚱한 녀석이 돌아왔다.
프라모델 판매하는 회사에 다녔던 선국 씨. 일을 그만두고 쉬던 아들을 과수원으로 부른 건 아버지 관채 씨였다. 쉴 바에 일이나 도우라는 생각이었건만, 선국 씨는 그곳에서 평생직장을 발견했다.
들인 공에 비해 헐값에 거래가 되는 배 농사의 현실이 안타까웠던 선국 씨. 그래서 생각해낸 인터넷 직거래. 절대 짓지 않겠다던 농사인데 제 발로 호랑이굴로 들어가고야 말았다. 기 센 두 남자가 만났으니, 가족들의 예상대로 매일이 전쟁. 자고로 농부는 부지런해야 하건만 놀러 갈 곳은 다 다니고 농사를 짓겠다는 아들이 탐탁지 않은 관채 씨. 2년 전에는 도저히 안 되겠다며 아들을 쫓아내기도 했단다. 그야말로 불타는 부자(父子). 그 바람에 샌드위치가 된 어머니 강선임(59) 씨는 남편 진정 시키랴, 아들 달래랴, 여기에 손주들까지 돌보랴 정신이 없다.
8년째 계속되고 있는 아버지의 농사 트레이닝. 그 사이 선국 씨는 한 여자의 남편이,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자식들에게만은 가족과 함께한 추억을 남겨주고 싶은 선국 씨는 성공한 농부, 듬직한 남편 그리고 좋은 아버지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왜 실수는 아버지 앞에서 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선국 씨가 만질 때는 꿈쩍도 안 하던 농기계가 아버지 손만 닿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시동이 걸리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인간극장’에서는 4대가 모인 배 과수원 이야기를 전한다. <사진=‘인간극장’ 캡처> |
◆눈치 장전, 미소 발사! 에린은 적응 중
농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선국 씨처럼, 농부의 아내, 그것도 한국 농부의 아내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는 에린 진 오라일리 씨다. 캐나다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경험을 쌓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운명의 짝을 만났다. 3개월 동안 말 한마디 걸지 못하고 곁에서 지켜만 보던 남자. “폰 넘버(phone number)!” 선국 씨의 한마디가 마음을 움직였다.
외국인을 며느리로 들일 줄 몰랐던 건 관채 씨와 선임 씨도 마찬가지. 명절을 빼고도 제사만 다섯 번. 외모부터 문화까지 다른 에린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열심히 해보겠다는 에린의 말에 시할머니 정순금(84) 씨와 선임 씨는 마음을 열었지만, 관채 씨의 마음은 도통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6개월이나 지속된 반대를 극복하고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했다. 올해로 6년 차 부부는 장난기 가득한 맏딸 임민아(5)를 낳고, 지난해에는 아들, 임노아(6개월)까지 낳았다.
올해로 한국 생활 8년, 그런데 한국어 실력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영어 강사로 일할 때는 쓸 기회가 없었고, 두 아이를 기르면서는 바빴다는데, 여기에 걸쭉한 사투리까지 더해지니 시댁에 들어서면 눈치부터 장전. 모르는 말은 웃음으로 넘어가는 여유도 생겼다. 그래도 일손이라도 거들려는 며느리가 예뻐, 시어머니 강선임 씨는 반찬 만드는 것부터 맏며느리의 역할까지 하나하나 알려 준다.
베이비시터가 된 관채 씨는 얼음장 같던 마음도 손주들 웃음에는 속수무책, 사르륵 녹아버리고 만다. 수정작업이 시작되고, 시부모님의 결혼기념일도 돌아왔다. 바쁜 밭일 때문에 늘 뒷전이었던 기념일을 챙기기 위해 이번에는 맏며느리가 소매를 걷어 올렸다.
◆다시, 배꽃이 필 무렵
올해도 배 밭에 봄이 왔다. 잠에서 깨어나라는 봄바람에 가지들은 하얀 꽃망울을 피워낸다.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수정을 해줘야 하는 배 농사. 열흘도 채 되지 않는 개화 기간에 비라도 내리면 큰일. 농부의 마음은 분주해진다. 속도를 내는 선국 씨와 일꾼들. 할 일은 태산이건만, 후드득 쏟아지는 빗줄기에 수정작업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그리고 선국 씨까지 무려 삼대에 걸쳐 내려온 과수원. 그곳에서 다섯 살이던 선국 씨는 아버지와 함께 배나무를 심었다. 그렇게 나무가 자라고, 아들은 농부가 되었다. 하얀 배꽃 흐드러지게 핀 과수원은 선국 씨에게 그랬듯, 과수원은 민아에게도 드넓은 놀이터가 되어줄 것이다.
어느 날, 배 밭에 온 가족이 모이고, 민아와 노아의 나무를 심는다. 오랜 시간 비바람을 이겨내고, 마침내 열매를 맺는 배나무처럼 두 아이도 단단한 어른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다.
‘인간극장’에서는 자식을 위해 심없던 배나무들과 그 밭에 아버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 그렇게 4대가 모인 과수원 이야기를 전한다.
[뉴스핌 Newspim] 정상호 기자(newmedi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