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부진 재개발 속 주민 불안감만 커져
거주자 없이 방치돼 범죄의 온상 되기도
서울 폐가 1만호, 전체 공가는 8만여호
[뉴스핌=이성웅 기자] 서울 관악구 봉천동. 1970년대말 정화추진사업을 거쳐 이제는 고층 아파트 단지가 제법 들어섰지만, 여전히 이질적인 공간이 동네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저기 깨진 유리창과 자물쇠가 굳게 채워진 집들이 보인다. 한눈에 봐도 인적이 끊긴지 오래됐다. 수도검침 기재란에는 9월 사용수치가 적혀 있다. 그런데 몇년도인지는 알 수 없다. 전기 계량기의 숫자는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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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봉천동 봉천 4-1-2재개발구역 내 방치된 한 주택. 이성웅 기자 |
인적이 드물어서인지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자 몇 남지 않은 주민들의 이목이 기자에게 집중됐다. 인기척에 놀라 뒤를 돌아보자 담 너머로 기자를 지켜보던 인영(人影·사람의 그림자)이 휙하고 사라진다.
봉천동에서 상도동으로 넘어가는 국사봉터널과 맞닿은 이곳은 봉천 4-1-2 주택재개발 지역이다. 지난 2007년 재개발조합 설립이 추진돼 2010년 조합이 설립됐지만, 아직까지 사업 시행 인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
재개발 계획이 나온 후 10년 가까이 방치되면서 큰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인근 아파트 단지와 대조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공인중개사를 운영하고 있는 박모(53·서울 관악구)씨는 "A건설에서 맡을 거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몇년째 방치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사람 살기 힘든 곳이 돼 버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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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 4-1-2 재개발구역 너머의 고층아파트. 아래 집들과 대조된다. 이성웅 기자 |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서울 지역 폐가는 1만호, 사람이 살지 않는 전체 공가는 8만여호.
바로 옆 4-1-3구역 상황도 마찬가지다. 인적이 드물고 골목이 많아 범죄 우려도 크다. 이 지역에만 재개발 구역 3곳이 밀집해 있는데, 한 가운데엔 초등학교도 있어 학부모들 걱정이 크다.
9살 아들을 둔 엄마 조모(35·서울 관악구)씨는 "소문만 무성한 재개발 예정지들이 학교를 에워싸고 있어 불안한 면이 있다"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교시간 맞춰 마중을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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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봉천동 봉천 4-1-3재개발구역 내 방치된 빌라. 이성웅 기자 |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됐다가 끝내 해제된 곳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서울 종로구 사직터널 바로 옆엔 사직 2구역이 위치하고 있다.
사직 2구역 면적은 3만4268㎡에 달해 방치된 가구 수도 봉천동의 수배에 달했다. 게다가 관리가 전혀 안되고 있는 노후 주택은 이미 재난위험시설(D등급)로 지정돼 붕괴 위험까지 동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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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직동 사직 2구역 내 주택들이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됐다. 이성웅 기자 |
범죄자나 노숙자들의 온상이 될 수 있어 사람이 살지 않는 주택들은 경찰의 관리대상으로 지정돼 있었다. 이 때문에 지역 경찰들은 매년 2월말에서 3월초 인근 폐가 밀집 지역을 일제히 수색하고 있다.
이곳은 최근까지 주거환경개선지역이었다가 지난달 재개발 구역에서 해제됐다. 서울시는 이곳이 한양도성 터라는 이유에서 아파트를 신축하지 않고 한옥마을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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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 은신처로 사용될 우려가 있는 서울 사직동 사직 2구역 내 주택들이 경찰 관리대상으로 지정돼 있다. 이성웅 기자 |
지난 2003년 재개발 조합 설립이 추진됐던 것을 감안하면 15년째 불확실성에 시달려야 한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직 2구역의 경우 오는 7일부터 구청과 함께 위험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한 조치에 들어갈 것"이라며 "시가 단독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거주민들과 협의를 통해 필요한 시설이나 조치들을 취해 나갈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봉천동 재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관악구청 관계자는 "사업자가 선정되고 철거가 진행되기 전까지 구청, 관할서, 재개발 조합 등에서 수시로 해당 지역을 순찰하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
[뉴스핌 Newspim] 이성웅 기자 (lee.seongwo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