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상 100% 지분 아니면 국내 자회사 보유 불가
역량 강화 위한 국내 M&A 포기, 도시바 인수도 난항
주도권 박탈 상실감 커, 자회사 승격 전망 ‘오리무중’
[편집자] 이 기사는 4월 3일 오전 10시10분 프리미엄 뉴스서비스'ANDA'에 먼저 출고됐습니다. 몽골어로 의형제를 뜻하는 'ANDA'는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과 도약, 독자 여러분의 성공적인 자산관리 동반자가 되겠다는 뉴스핌의 약속입니다.
[뉴스핌=정광연 기자] SK하이닉스(부회장 박성욱)는 '손자'라서 서럽다. SK그룹에 최대 이익을 가져다주는 핵심 계열사이지만, 인수합병(M&A)하나 마음대로 도전할 수 없다. 손자회사 규제(공정거래법)가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그룹 안팎에서 자회사 승격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37조원이다(3월31일 기준). 이는 모회사인 SK텔레콤(사장 박정호)의 20조6000억원보다 17조원 많다. 특히 최근 3년간 영업이익은 총 13조7223억원으로, SK텔레콤 5조688억원, SK이노베이션(사장 김준) 5조251억원을 압도한다(표 참고).
지난 2012년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결단이 ‘신의 한수’로 평가받는 이유다.
이처럼 SK하이닉스는 SK그룹에 합류한지 불과 6년만에 그룹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계열사로 올라섰다. 하지만, 인수합병(M&A)을 통한 역량 강화 및 신사업 발굴 측면에서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정부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SK하이닉스는 그룹 지배구조상, 지주사인 SK㈜의 손자회사다. SK하이닉스의 최대주주는 SK텔레콤(20.7%)이며 SK텔레콤의 최대주주가 SK㈜(25.2%)다.
이같은 지배구조로 SK하이닉스는 M&A조차 마음대로 진행할 수 없다. 이유는 공정거래법상 손자회사 규제 때문이다.이 법에 따르면 손자회사가 증손자회사를 보유할 경우 해당 기업의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한다.
즉, 100%가 아니라면 특정 기업의 지분을 인수해 최대주주로 올라서거나 전략적 지분 투자로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자회사로 승격할 경우 지분율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M&A에 나설 수 점과 비교하면 상당히 큰 제약이다.
공정거래법이 국내법인에만 적용돼 SK하이닉스의 해외기업 인수는 가능하다. 하지만 해외 M&A는 규모가 크고 해당 국가 정부의 개입이 빈번하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크다는 진단이다.
실제로 당장 SK하이닉스가 주력중인 도시바 반도체 사업 인수전은 미국 웨스턴디지털(WD), 대한 훙하이, 중국 칭화유니그룹 등 10여개 기업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가 기술 유출을 이유로 외국계 기업들을 견제하고 있어 결과를 낙관하기 힘들다. ‘해외’ 아니면 ‘포기’라는 극단적 M&A 환경에 놓여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공정거래법을 손봐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대선 정국에 맞물린 일련의 경제민주화 정책들은 오히려 대기업 해체를 요구하고 있어 개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손자회사라는 이유로 기업의 인수합병을 법으로 막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며 “기업 자율에 맡기는 쪽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룹 차원의 반도체 수익계열화 및 경쟁력 강화에서도 ‘손자 SK하이닉스’는 걸림돌이다. 현 상황에서는 지주사 또는 모회사가 관련 기업을 인수한 다음 이를 다시 재편해 SK하이닉스에 흡수시키는 등 후속작업이 불가피하다.
기업 내부에서는 손자회사라는 이유로 사업 주도권을 확실하게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터져나오고 있다. 시총과 실적 모두 앞섰음에도 지배구조상 SK텔레콤 눈치를 봐야 한다는 불만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SK텔레콤을 투자부문 및 사업부문으로 인적분할하고 SK하이닉스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투자부문을 SK㈜의 IT 사업부와 교환하는 방식의 SK하이닉스 자회사 승격 시나리오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SK텔레콤이 3월 주총에서 인적 분할 검토를 부인해 자회사 승격이 본격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도시바 반도체 사업 입찰과 자회사 승격 부분에 대해서는 그 어떤 입장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정광연 기자(peterbreak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