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아내가 죽은 후 삶의 희망을 잃고 살아가던 보험회사 과장 강수(김남길). 그는 회사 복귀 후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미소(천우희) 사건을 맡게 된다. 며칠 후 미소를 보기 위해 병원을 찾은 강수는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한 여자와 마주한다. 그리고 곧 그것이 미소의 영혼임을 알아챈다.
영화 ‘어느 날’은 남겨진 남자와 버려진 여자가 만나 내면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눈길을 끄는 건 역시나 로맨스의 부재. 영화 속 강수와 미소는 남녀 관계가 아닌 의식의 동반자로 극을 끌고 나간다. 그간 ‘여자, 정혜’(2005), ‘멋진 하루’(2008), ‘남과 여’(2016) 등을 통해 사랑의 세밀한 감정을 그려온 이윤기 감독은 자신의 장기인 로맨스를 과감하게 벗어던졌다.
물론 감독 특유의 섬세하고 깊은 감성은 그대로 살아있다. 이윤기 감독은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그들의 내면을 파고들었다. 동시에 생사의 경계에 선 인간을 세밀하게 관찰, 묵직한 메시지를 녹였다. 이처럼 영화 전체에 현실적인 감정을 깔아 놓은 덕에 영혼을 본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 역시 거부감 없이 다가온다.
김남길과 천우희의 감정 연기는 의심할 여지 없이 훌륭하다. 김남길은 강수의 내면을 눈빛, 표정, 몸짓 하나하나에 오롯이 담았다. 섬세한 그의 연기는 영화의 빈틈을 메우기 충분하다. 식물인간이 된 미소와 그 영혼을 연기한 천우희는 안정감 있는 연기로 캐릭터를 땅에 붙였다. 더욱이 스크린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천우희의 밝은 얼굴이 반갑다.
인간의 상처, 그리고 삶과 죽음을 다룬 만큼 러닝타임 내내 가볍고 유쾌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무게가 벅찰 정도는 아니다. 상황이 만들어내는 유머가 곳곳에 배치돼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오는 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오퍼스픽쳐스·CGV아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