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경영권 무장해제 길 열려…재계 부작용 우려
[뉴스핌=최유리 기자]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3당이 3월 임시국회에서 상법개정안 통과를 재주진하기로 하면서 재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해외 투기자본에 경영권을 빼앗길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중장기 성장보다 경영권 방어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15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원내교섭단체 3당이 상법개정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3당이 합의한 내용은 ▲다중대표소송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전자투표제 의무화 ▲자사주 의결권 제한 등 4가지다. 사외이사 선임요건 강화, 집중투표제 의무화, 주주대표소송제 강화는 합의안에서 제외됐다.
기업의 경영권을 옥죄는 핵심 내용이 유지되면서 재계 안팎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특히 감사위원 분리선출이 시행되면 해외 자본이 국내 기업 경영권을 '무장해제'할 수 있어서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감사위원 선임시 모든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경우 최대주주의 의결권도 3%로 제한되기 때문에 3%의 지분을 가진 해외 펀드 여럿이 연대하면 최대주주보다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해외 펀드가 이사회를 장악해 의결사항이 이들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기업의 경영 정보가 적대적 세력에게 넘어가는 것도 막기 어려워진다.
투기 자본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가 되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불필요한 자금만 쏟아붓는 소모전이 불가피하다고 기업들은 입을 모은다. 기업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과도한 자금을 투입하면 중장기 성장 동력인 연구개발이나 시설투자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박용만)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상법상 사전규제만 강화하면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면서 "결국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기업하기 가장 힘든 환경이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의 경영 불확실성을 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인적분할이나 합병 시 분할 회사가 자사주에 분할 신주를 배정할 수 없도록 한 자사주 의결권 제한이 대표적이다. 기업은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자사주를 매각해 우호지분을 확보하거나 적시에 자금을 충당할 수 있다. 이를 규제할 경우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방어 장치를 없애고 재무적 선택권을 제한해 불확실성을 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다중대표소송제의 경우 기업의 의사결정을 지연시키는 부장용을 초래할 수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임원들의 경영행위에 대해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한다. 모회사와 자회사 주주간 이해가 충돌할 가능성이 클 뿐 아니라 소송 리스크가 기업 활동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SK-소버린 사태에서 보듯 오너의 지배력이 약한 회사는 해외 자본의 표적이 된다"면서 "최고경영자들이 경영권 보호 문제로 머리를 싸매야 하는 상황에서 제품과 경영 혁신에 집중할 수 있겠냐"고 우려했다.
[뉴스핌 Newspim] 최유리 기자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