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추장비 증가 주목…"내년 미국 산유량 1970년 이후 최대"
[뉴스핌= 이홍규 기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 재료가 떠받치고 있는 국제 유가에 피로감을 느낀 투자자들이 순매수를 줄이고 점차 유가 하락 방향 베팅을 늘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13일(미국 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이 인용한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일로 끝난 주간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의 원유 선물 롱(Long, 순매수) 포지션은 5.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 원유선물 순매수 줄고 순매도 늘기 시작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옵션 순매수 포지션은 2만540계약 감소한 35만9387계약을 기록했다. 각각 순매수는 1.8% 감소, 순매도(Short, 숏 포지션)는 26%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순매도 포지션의 증가폭은 3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또 같은 기간 ICE 유럽선물거래소의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에 대한 순매수 포지션도 2.1% 감소한 46만2860계약을 나타냈다.
(흰색) WTI 순 매수 포지션 (파란색) OPEC 원유 생산량 <자료=CFTC, 블룸버그통신> |
블룸버그는 OPEC이 세계적인 공급과잉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전례없는 낙관론이 시장에 퍼진 이후 헤지펀드들이 한 달 만에 처음으로 WTI 선물에 매수 포지션을 줄였다고 전했다.
OPEC의 감산 합의 재료가 가격에 거의 반영됐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이제 미국의 셰일 회사 시추장비 증가에 주목, 이에 따른 공급 과잉을 다시 우려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 감산 효과 피로감… 증산 요인으로 눈길
지난 1월 OPEC 회원국들이 작년에 타결한 감산 합의에 따라 산유량을 일평균 120만배럴 줄이기 시작하고 감산 이행률이 90%를 기록하는 등 합의 준수 비율이 역사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지만, 최근 두 달 국제 유가는 배럴당 50~55달러 범위에서 등락을 반복했다.
어게인캐피탈의 존 킬더프 파트너는 "투자자들이 박스권 등락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며 "여름까지 유가 선물이 이 박스권을 상향 돌파하지 않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가운데 지난주 미국 원유 생산업체들은 4년여 만에 최대치로 원유 시추를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는 소식이 눈길을 끌었다. 텍사스와 오클라호마 등 셰일 생산 지역에 엑손 모빌과 콘티넨탈 리소시즈 등 석유 기업들이 투자를 늘렸기 때문이다.
또 지난 3일까지 한 주간 미국의 원유 생산은 일평균 898만배럴을 기록해 작년 저점에서 50만배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 에너지 정보청은 내년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일평균 953만배럴을 기록, 1970년 이후 최대치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원유생산 업체들은 생산을 늘리면서 가격 하락 위험에 대비, 원유 선물에 매도 포지션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FTC 자료에 따르면 생산업체들의 올해와 내년 가격 하락에 대비한 원유 선물과 옵션 매도 포지션은 7만7498계약으로 늘어나 2007년 8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씨티 퓨처스퍼스펙티브(Citi Futures Perspective)의 팀 에반스 에너지 분석가는 "매도 포지션이 증가한 것은 OPEC의 감산 재료가 시장 가격에 완전히 반영됐음을 보여준다"며 "강세론자들은 유가 약세를 시사하는 뉴스에 취약해졌다"고 인터뷰했다.
[뉴스핌 Newspim] 이홍규 기자 (bernard020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