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냐 미래냐…대기업과 총수를 바라보는 이중시각
2016년 유착은 비선실세에 의해 주도된 외압성 유착
[뉴스핌=이승제 선임기자] '여의도 전설(戰說)'은 정치권에서 격렬하게 오가는 말과 논쟁 속에 숨겨진 또다른 욕망, 본심일 수도 있는 속내를 뽑아내려는 시도입니다. 한국 정치권의 지나친 엄숙주의를 벗어나 자유롭게 유희하려 합니다. 틀을 깨는 탈주를 꿈꿉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재벌들이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이라는 데 동의하나. 국민들에게 사과하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더 좋은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겠다. 저 자신도 부족한 게 너무 많고, 삼성도 바꿔야 될 점, 시대의 변화 따라, 국민의 눈높이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점, 특히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많이 느꼈다.
-정경유착을 끊겠다고 약속하겠느냐.
▲(최태원 SK그룹 회장)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기업총수들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 제1차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행간을 읽어야 하는 날이었다.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대한민국 경제의 최선봉에 서 있는 8대 대기업의 총수들이 국회 청문회장에 불려나온 날이었다.
6일 ‘최순실 게이트’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최순실 게이트의혹, 대통령 탄핵 정국, 212만 촛불민심 속에서 열린 청문회다. 예상했던 대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8대 대기업 총수들은 여야 의원들의 질의에 위축된 모습이었다. 대답 내용은 소극적이었고,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이들 총수들은 대가성 있는 뇌물을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미르· K스포츠 재단,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등에 대한 지원을 통해 기업 경영과 관련한 부당한 대가를 받았다는 의혹이다. 특검의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하지만, 돈을 건넸다는 증언과 증거가 나왔고 그에 따른 반대급부의 의혹이 제기됐다.
다른 쪽에선 한국경제를 이끌고 있는 이들 대기업의 국제신인도 하락 등을 우려하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기아자동차, LG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의 경우 최고경영자(CEO) 리스크가 곧 회사 리스크로 이어진다. 만에 하나, 이들 대기업의 경영이 급격히 위축된다면 그것은 한국경제에 재앙일 수밖에 없다. 대가성 뇌물 의혹은 현재의 일이고, 대기업의 국가경제 기여는 미래를 향한다.
이날 청문회에서 확실해진 것이 있다. 어쩌면 유일한 성과일지 모른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자"라는 데 여야 의원과 총수들이 암묵적으로 공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 노력하겠냐는 질문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하겠다"고 답했다. 또 미르와 K스포츠재단 출연에 본인 사면 등 대가성이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가성을 갖고 출연하지 않았다. 기업별로 할당을 받아서 액수만큼 낸 것"이라고 밝혔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과 관련해 "청와대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게 기업인들의 입장"이라며 정경유착의 근절이 필요하다고 내비쳤다.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준조세 성격의 금품거래에 대한 질문에 "기업은 정부 입장을 따르는 게 현실"이라고 답변했다.
과거 1970~80년대의 고도성장기의 정경유착과 달리, 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2016년의 정경유착은 사상 최대의 국정농단 비선실세에 의해 주도된 외압성 유착에 가깝다.
권력을 쥔 비선세력의 강압에 마지 못해 응한 총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날 총수들의 정경유착에 대한 언급에는 그간의 고민과 갈등이 배어 있었고, 여기에서부터 정경유착 근절을 향한 첫걸음이 시작될 것임을 예고했다.
[뉴스핌 Newspim] 이승제 선임기자(openeye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