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미실현 손실 안은 중앙은행들.. 출구전략 부재
[뉴스핌=김사헌 기자] "이게 합법적인 겁니까? 결국 나랏돈인데 나중에 어쩌려구요."
시가총액 기준 세계 3위와 4위 주식시장인 일본과 중국은 정부가 10대 최대 주주인 상장기업 비중이 무려 30~4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돈놓고 돈먹는' 투기적 위험자산 시장인 주식시장이 유동성이 고갈되거나 혹은 나랏돈의 뒷받침이 없으면 당장 무너지게 구조화된 셈이어서 계속 논란거리다.
지난 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월 말 기준으로 일본 증시의 3대 지수를 구성하는 상장사들 중 30% 가량이 10대 주주 목록에 일본은행(BOJ)이 포함된 것으로 추산된다고 보도했다. 또 중국의 경우 상장사 39%의 10대 주주에 '국가대표(국대)'라고 불리는 2대 국부펀드가 올라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월말 현재 일본은행(BOJ)이 대주주로 올라있는 일본 주요 상장기업<자료=블룸버그 데이터> |
이는 결코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매월마다 중앙은행과 국부펀드가 패시브 주식상품 매입을 통해 주요 상장사 지분을 늘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블룸버그통신의 집계에 의하면, 현재와 같은 상장주식펀드(ETF) 매입 속도를 지속할 경우 BOJ는 내년 말이면 닛케이225 지수 구성 종목 중 55개 회사의 제1대 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이미 8월말 현재 BOJ는 일본 81개 주요 상장사의 5대 주주로 올라있었다.
◆ 자산시장 부양하려다 나랏돈 손실위험 빠뜨린 정부
그 동안 국민의 세금, 이른바 '나랏돈'인 연기금이나 국부펀드가 주식시장의 최대 큰 손이 된 것은 낯선 일이 아니지만, 세계 3위 4위를 달리는 엄청난 규모의 주식시장에서 정부가 최대 주주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현상이다.
이는 금융 위기 이후 정부가 주도적으로 자산 가격과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합법적인, 통상적인 정책 수단을 다 소모하고 난 뒤에 전례없는 정책수단까지 활용해 지속적으로 대규모로 개입해 온 결과물이다.
이미 앞서 BOJ가 ETF 매입에 나설 때 이것이 과연 합법적인, 올바른 정책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다른 나라 국채를 매입하거나 위험자산인 회사채를 매입하자고 결의한 것도 논란거리다. 이들 중앙은행 정책결정자들은 물가 안정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면 이례적인 정책 수단을 활용하자는 쪽으로 입장을 모았다.
주식시장 전문가들은 중앙은행이 찍어낸 돈으로 위험자산을 매입하는 것은, 정부가 거대한 헤지펀드가 되어 작은 연못에서 고래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입을 모은다. 월가에서는 BOJ를 '도쿄 고래'라고 부르는데, 이는 과거 런던 주식시장에서 활동하던 큰 손 '런던 고래'에서 차용한 별명이다.
야데니리서치 대표인 에드 야데니는 "정부는 중앙은행에게 공짜돈을 빌려달라거나 납세자인 국민에게 거대한 '폰지게임'에 동참하라고 재촉하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또 전문가들은 정부의 시장개입은 기업의 기초적인 평가 가치보다는 정부의 매매동향을 추종하는 투자자 전략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주식 가치의 왜곡을 불러온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주식을 매입할 경우 기업 경영진이 주가에 악영향을 미치는 문제점을 고치는 데 소홀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가 보유한 주식을 처분할 때 시장에 미칠 충격에 대한 우려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된 것이다.
마크 모비우스 템플턴 신흥시장그룹 담당 회장은 최근 보고서에서 "투자 업계 사이에서 BOJ가 연못 속의 고래라는 얘기를 한다"면서 "점점 더 많은 투자자들이 기업 펀더멘털 보다는 BOJ의 일일 매매동향만 바라보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 미국 유로존 영국 스위스도… "남일 아냐"
문제는 일본과 중국에만 있지 않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와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천문학적 액수의 국채를 사모으면서 시중금리를 낮췄다. ECB와 영란은행(BOE)은 최근에 회사채까지 매입하고 있으며, 스위스국립은행(SNB)은 스위스프랑의 평가절상 압력을 낮추기 위해 5000억달러 규모의 외국 국채를 매입하는가 하면, 1000억달러에 달하는 외국 주식도 사들였다.
<자료=블룸버그 데이터> |
BOJ의 경우 2010년 12월부터 ETF를 사들였는데, 올해 11월 말 현재 보유잔액이 무려 13조엔에 달해 일본 ETF 전체의 2/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WSJ는 집계했다. 이를 통해 주요기업에 대한 지분율을 추정해 보면 미쓰미전기의 경우 무려 지분율이 16.8%에 달하고 패스트리테일링은 13.5%, 파눅은 8.5% 정도로 나타났다고 WSJ는 자체 집계 결과를 소개했다.
패스트리테일링의 대표이사는 BOJ의 이런 간접적인 주요주주 등극이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면서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실수라고 비판했다. 앞서 8월말까지 BOJ는 패스트리테일링의 지분율이 25%에 달했으며, 이는 유통 주식물량의 절반 가까이 되는 정도였다.
BOJ 관계자는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가 언급한 것처럼 ETF 매입으로 시장이 크게 왜곡되는 것은 없다는 입장이라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BOJ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기업의 주가는 다른 곳에 비해 고평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NLI 연구서의 이데 신고 수석주식전략가는 BOJ가 10%이 유통주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주가수익배율(PER)는 동종 기업의 평균 수치보다 높았다고 지적했다.
◆ 출구전략 없는 BOJ, 4년 만에 적자.. 미실현 손실 10조엔에 달해
지난해 9월부터 BOJ는 정책의 중심을 금리 쪽으로 선회했는데, 앞서 막대한 자산매입 정책이 효과가 없는 대신 손실 위험만 키웠다는 비판에 직면한 뒤의 일이다. 일본 국회의원들은 이미 BOJ가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90%에 달하는 자산 규모를 부풀린 데 대해 '출구 전략(exit plan)'이 존재하느냐고 질문해왔다. 구로다 총재는 매번 보유한 채권에서 큰 이자 수입을 거두고 있으며 충당금을 통해 손실 위험을 충번히 커버할 수 있다고 대답했을 뿐 상세한 출구전략은 제시하지 못했다.
한편, 일본은행(BOJ)은 전 세계 중앙은행들 중에서 발행주식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몇 안 되는 중앙은행이다. 올해 8월 BOJ 출자주식은 장외시장에서 종가 평균치가 3만5915.63엔이며, 16거래일 동안 2600주가 거래됐다. BOJ는 자스닥(JASDAQ) 장외시장에 8031번으로 등록되어 있다.
일본은행(8301) 장외 주가 동향 <자료=블룸버그 데이터> |
BOJ는 해외채권 등 외화자산 가격 하락에다 국채 보유액에 대한 잠재손실에 대한 충당금 적립 그리고 엔화 강세에 따른 외화자산 환산가치 하락 등으로 9월 기준 반기 2002억엔 적자를 기록했다. 4년 만에 처음 적자로,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가 취임한 이후 처음이다. 외화자산 손실액은 6985억엔에 달했고 채권보유액 상각이 6000억엔이었다. 대손충당금 전입액은 2420억엔을 나타냈다. BOJ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6288억엔 흑자를 냈는데, 대부분 채권이자 수입이었다.
BOJ의 대손충당액은 약 3조엔 미만인데, 11월20일 현재 미실현 상각 손실은 10조엔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년 만에 적자 낸 일본은행(BOJ) <자료=블룸버그 데이터> |
<자료=블룸버그 데이터> |
[뉴스핌 Newspim] 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