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축으로 한 세계 질서 종료
[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이른바 트럼프 시대는 전세계 질서에서 미국의 퇴장을 의미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보호 무역주의와 반이민 정책 등 주요 공약들을 빌미로 도널드 트럼프 45대 대통령 당선자가 미국을 자칫 고립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높지만 실상 이보다 더욱 근본적인 차원에서 미국의 입지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다.
도널드 트럼프 <사진=블룸버그> |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자에게 글로벌 비즈니스 이해 상충을 슬기롭게 풀어나갈 것을 권고한 한편 미국이 ‘없어서는 안 되는(indispensable)’ 국가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자의 외교 정책은 국제 무역뿐 아니라 크고 작은 지정학적 사안까지 전세계 질서 속에서 미국이 가졌던 책임을 모두 내려 놓는 것을 골자로 한다는 분석이 제시됐다.
21일(현지시각) 브루킹스 연구소의 로버트 케이건 연구원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의 칼럼에서 트럼프 시대는 곧 지난 70년간 미국을 축으로 했던 전세계 질서의 종료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혹자는 트럼프 당선자가 아무런 외교 정책관을 확립하지 않았다고 비판하지만 실상 그가 명백한 관점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 사회의 커다란 공감대와도 일치한다고 케이건 연구원은 강조했다.
이라크 및 아프간 전쟁에 이어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이미 전세계 질서 속에서 미국의 입지는 크게 달라졌다고 그는 판단했다.
국제 사회와 교감에 커다란 무게를 두는 이른바 국제파로 꼽히는 젭 부시와 마크로 루비오 공화당 경선 후보가 쓴 맛을 본 것이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역시 미국을 지나치게 ‘없어서는 안 되는’ 국가로 여긴다는 비판을 받은 사실이 모두 같은 맥락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미 자본주의의 뿌리가 깊이 내린 미국이 국제 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다.
이와 달리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국가적 유아론(national solipsism)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고 케이건 연구원은 설명했다.
미국의 국가적 이해라는 개념의 폭을 대폭 축소하고, 그 지엽적인 이해를 지키는 일과 무관한 모든 사안에서 발을 뺄 것이라는 얘기다.
사실 이 같은 움직임은 이미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 총회에서도 미국을 축으로 한 국제 질서가 와해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자리에서 이안 브레머 뉴욕대학교 교수는“전세계가 지정학적 침체를 맞았다”고 주장하고, 이는 사이버 테러부터 핵무기까지 주요 쟁점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위축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를 계기로 전통적인 질서의 와해는 보다 가속화될 전망이다. 지난 70년에 걸쳐 미국은 아시아와 유럽 등 우방국에 군대를 파병했고, 개발 경제 질서를 구축해 주요 국가간에 경쟁과 번영을 도모했다.
반면 앞으로의 지정학적 동맹은 이슬람 테러리즘과 싸울 의지지 여부에 따라 형성될 것이라고 케이건 연구원은 내다봤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등이 이 같은 공통 분모를 지니고 있다.
국가 안보와 함께 트럼프 시대의 또 다른 축은 돈이다. 국제 무역뿐 아니라 외교 정책을 포함하는 모든 대외 관계는 미국 경제에 이득을 제공하는 것인지 여부를 근간으로 새로운 판도를 형성할 전망이다.
케이건 연구원은 트럼프 시대 미국은 1920~1930년대의 복귀를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20년 가량 미국 사회는 국제 현안에 대한 부담과 책임을 거부했고,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세운 현재의 미국 역시 이 같은 공감대가 응집됐다는 주장이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