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및 국제무역 등 기존 체제 뿌리부터 흔들
[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는 지난 6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결정과 아울러 1950년대 이후 뿌리 내린 전세계 질서의 총체적인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른바 자유주의 질서와 자본주의 경제 체제로부터 소외된 민초들의 조용한 반란이 영국에 이어 미국까지 ‘서프라이즈’를 초래했다는 얘기다.
도널드 트럼프 <출처=블룸버그> |
11일(현지시각) 프란시스 후쿠야마 스탠포드 대학 교수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의 칼럼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승리가 전세계 질서 재편의 신호탄이라고 주장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는 자본주의와 국제무역 시스템 그리고 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확립됐다. 중국에서 제조 및 조립된 애플 아이폰이 크리스마스 시즌 미국과 유럽 소비자들의 손에 전해지는 것도, 수백만 인구가 신흥국에서 보다 나은 기회를 찾아 선진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도 기존의 세계 질서가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 시스템이 글로벌 경제에 기여한 바는 크다. 1970년부터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전까지 글로벌 상품 및 서비스 생산이 4배 급증했고, 중국과 인도를 필두로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절대적 빈곤에서 구해냈다.
문제는 기존의 시스템이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업들의 아웃소싱으로 인해 선진국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글로벌 시장의 과도한 경쟁은 효율성을 파괴시켰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를 계기로 수십년간 전세계 경제 및 국제 관계의 근간이 됐던 체제의 문제점은 더욱 크게 부각됐고, 그 결과 브렉시트와 미국 대선을 통해 기존의 질서에 대한 민초들의 반감과 포퓰리즘이 부상했다고 후쿠야마 교수는 주장했다.
정치적 실패라는 부분으로 시선을 돌리면 상황은 유럽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의 정치 시스템은 전통적인 노동자 계층을 제대로 끌어안지 못했다. 여성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히스패닉계 모두 경제적 과실을 나눠 갖지 못했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역시 세계화와 타협하는 사이 광범위한 소외 계층을 양산했다.
그렇다면 격동기를 상징하는 미국 신임 대통령 트럼프가 과열 전세계 시스템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 것인가.
경제적으로나 외교 관계 측면에서나 트럼프는 국수주의자의 색깔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포함한 무역 협정의 재협상 및 탈퇴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고, 일본과 한국 등 전통적인 동맹국들을 미국에 기대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무임승차자’로 몰아세우며 관계 변화 가능성을 열었다.
기존의 자유무역과 투자 질서는 미국을 주축으로 한 헤게모니 파워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무역협정을 포함한 체제를 흔드는 일방적인 행동에 나설 경우 세계 곳곳에서 이에 대적하는 세력들이 들고 일어날 여지가 높고, 1930년대 경험했던 경제 공황이 초래될 것이라고 후쿠야마 교수는 경고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은 ‘소프트 파워’의 형태를 취했지만 트럼프의 대선 승리는 미국을 상징하는 민주주의에 종료를 가져올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그리고 이는 자유주의 국제주의 캠프를 버리고 파퓰리즘 국수주의자를 신임 대통령으로 세운 미국의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