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보람 기자] 더워도 너무 덥다. 낮 기온이 36도를 넘어서는 여의도 한 복판. 취재 약속이 있어 큰 호흡 한번 한 뒤 밖으로 나가려던 기자에게 한 통의 메시지가 왔다. 그동안 알고 지내던 한 코스닥 상장사 IR담당자다. '기자님, 잘지내시죠? 주소좀 알려주세요. 저희 대표님이 가정용 빙수기를 보내드리고 싶다고 하셔서요.'
어딜가나 밥상머리 화두가 '김영란법'인 와중에 선물이 웬말. 하지만 갑자기 무슨 일로 빙수기를 보내주겠다는 건지 궁금했다.
'저, 그게…. 지난 2월에 탐방오셨을 때, 저희가 가정용 상품을 출시해서 성장성을 이어가겠다고 했었잖아요. 근데 그 제품이 이제야 출시가 됐어요.'
문자를 읽고 시계추를 6개월 전으로 돌려봤다. 대표이사가 회사의 성장성을 자신하며, 신제품을 출시하면 꼭 보내주겠다던 약속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상대방은 기억조차 못하던 6개월전 약속을 지키겠다는 마음이 고마웠던 것과 동시에 약속을 지키지 않는 여러 코스닥 상장 회사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과거 취재했던 코스닥 A회사. 2014년 하반기부터 산삼배양기를 개발·출시해 신성장동력으로 가져가겠다고 대대적인 광고를 했지만 2년 가까이 지난 올해 5월 발표한 분기보고서에는 '여전히' 산삼배양기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한 줄 짜리 설명이 전부였다. 그사이 실적과 주가는 한참 고꾸라져 있다.
또다른 코스닥 B사. 중국계 자금의 투자를 유치했다는 허위 공시를 내고 주가가 상승하자 자신만 수십억원 이익을 챙겼다. 이 회사 역시 실적은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할 위기에 처했고 주가는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코스닥시장에서 이런 사례가 한둘이 아니라는 데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회사의 결정을 알 수 있는 소통 창구 대부분을 금융감독원이나 한국거래소에서 제공하는 공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내부 결정이 뒤바뀌거나 지연돼도 바로 알 길이 없다. 특히 정정공시 제도를 악의적으로 이용해 수차례 공시를 번복하고 투자자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례도 빈번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코스닥시장에서 지난 일주일간 제출된 정정보고서는 100건에 달한다.
결국 경영진의 약속을 믿고 투자했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그 이후 오는 주가 하락 등 후폭풍은 오로지 개인투자자들의 몫이다. 코스닥시장이 여전히 개인 투자자들의 손해가 당연시되는 '개미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스닥시장에 투자된 자금 가운데 개인투자자 비중은 약 90%. 코스닥이 개인을 등에 업고 성장해 온 만큼 상장기업들 역시 기업설명회(IR) 개최 횟수를 늘리는 등의 방식으로 소통 창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소통 창구가 늘어나 경영투명성이 확보되면 투자자들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투자자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것, 그게 바로 주가 상승의 첫 걸음이자 최고의 주주친화정책이라는 점을 기업 경영진들은 명심해야 한다.
아, 물론 빙수기는 마음만 감사히 받았다. 대표이사의 약속이 기자가 아닌 투자자들에게 지켜지길 바란다면서.
[뉴스핌 Newspim] 이보람 기자 (brlee1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