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부채 시가평가 등 국제기준 적응노력해야
[뉴스핌=박영암 금융부장] #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자산부채 시가평가 감독기준' 설명회. 300여 보험사 실무자들이 한 데 모인 현장에는 이들의 고민을 반영하듯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부채시가평가와 지급여력강화가 야기할 후폭풍을 미리 가늠해보는 자리였다.
국내 보험사들이 새로운 국제회계기준 도입을 앞두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동안 보험업계는 선진국보다 상대적으로 느슨한 회계기준 덕에 자기자본 확충 등 건전성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순이익을 내부유보하는 대신 배당금 잔치를 즐겼다. 보험금 지급여력을 맞추기 위해 대주주들이 추가 출자하는 고통분담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금융당국의 정책변화로 ‘좋은 시절’은 끝났다. 솔벤시2와 보험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 도입으로 상황은 급변했다. 유럽연합이 올해 도입한 솔벤시2는 보험사의 내재적 위험에 상응하는 자기자본을 요구하는 건전성 규제다. 반면 IFRS4 2단계는 국제적으로 비교가능한 보험사 재무제표를 만들자는 취지다. 특히 증권투자자자와 보험계약자들의 재무제표 이해를 돕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도입취지는 달라도 둘 다 보험사의 자산뿐만 아니라 보험부채(책임준비금)의 시가평가를 요구한다. 현재 국내 보험업계는 보험부채를 계약체결 당시 할인율로 계산하는 원가주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보험부채 시가평가가 보험업계에 가져올 파장은 크다. 보험계약당시보다 할인율이 낮아질 경우 보험사들은 책임준비금을 추가 적립해야 한다. 특히 고금리(5%이상) 확정이율 상품을 많이 판매한 생보사일수록 부담이 커진다. 지난해 6월현재 생보사의 고금리 확정이율 계약은 143.1조원이고 전체 계약의 30.8%를 차지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내 생보사들의 자기자본확충을 위해 많게는 40조원 이상 필요하다고 추산한다.
금융당국이 지난 14일 설명회에서 발표한 위험기반 지급여력제도(RBC)강화방침도 고민거리다. RBC는 예상하지 못한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보험계약자에 보험금을 지급하게끔 책임준비금 이외에 추가로 자기자본을 보유토록 요구한다.
지난해말 국내 보험사들의 RBC(가용자본/요구자본)비율은 손보사 244.4%, 생보사 278.3%다. 모두 금융당국의 경영개선 권고 기준인 100%를 넘고 있다. 하지만 함정은 있다. 현행 RBC비율은 보험부채를 시가평가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자산(지급여력)은 과대평가되고 리스크(요구자본)는 과소평가되고 있다.
실제로 보험연구원의 조재린 연구위원 등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보험부채의 시가평가를 도입할 경우 국내 23개 생명보험사중 5개사가 150%미만으로 떨어진다. 부채시가평가와 RBC강화를 병행할 경우 11개사가 150%에 미달한다. RBC 비율 150%는 금융당국이 비공식적으로 요구하는 지급여력비율 하한선이다.
보험부채 시가평가와 RBC강화로 보험업계는 비상등이 커졌다. 서둘러 자기자본을 확충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중이다. ▲내부유보 확대 ▲유상증자 ▲후순위채 발행 등을 통해 자기자본 확충에 나서고 있다.
이들 방안은 기존 관행에 익숙한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을 불러온다. 내부유보를 늘릴 경우 배당금이 준 주주들은 심기가 불편해질 것이다. 유상증자는 경영권을 갖고 있는 대주주에게 추가 출자를 요구한다. 국내 보험업계 대주주들이 소위 ‘재벌 오너’인 현실을 감안하면 적잖은 반발이 예상된다.
이같은 부담을 이유로 미국이나 일본보다 먼저 이들 제도를 도입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업계에서 제기된다. 회계기준변경으로 영업이나 자산운용 등 보험사 핵심역량이 타격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반박이다. 회계시스템 개발 등 부속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하소연한다.
전문가들은 업계의 고충은 이해하지만 지급여력제도 강화나 보험부채시가평가 도입은 금융당국 손을 이미 떠났다고 본다. 오히려 국내 보험업계가 이를 인정하고 상품구조 자산운용 리스크관리 등을 개선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조언한다.
국내보험업계는 회계보호막으로 누렸던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새로운 국제기준에 부응하려는 노력을 보여줄 때다.
[뉴스핌 Newspim] 박영암 금융부장 (pya840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