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빼어난 미모와 탁월한 창법을 자랑하는 소율(한효주)과 심금 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연희(천우희)는 경성 제일의 기생학교 대성 권번에서 자란 둘도 없는 친구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작곡가인 윤우(유연석)가 ‘조선의 마음’이란 노래를 만들면서 두 사람의 우정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
해어화는 말을 알아듣는 꽃이란 뜻을 지녔다. 같은 의미를 지닌 동명의 영화 ‘해어화’ 역시 최고의 가수를 꿈꿨던 마지막 기생의 숨겨진 사연을 그린 작품이다. 예인이 되기 위해, 후에는 민중의 마음을 대변하는 가수가 되기 위해 겨루는 두 여인의 스토리다. 물론 예인의 이야기와 별개로 한 남자를 사이에 둔 두 여자의 사랑 쟁탈전도 펼쳐진다.
문제는 이 사랑의 쟁탈전이 영화의 몰입도를 떨어트린다는 데 있다. 우선 천우희와 유연석의 감정 변화를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캐릭터 전사가 부족한 탓이다. 왜 이들의 감정 교류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시나리오상에는 천우희와 유연석이 서로에게 날을 세우며 진심을 털어놓는 신이 존재했다)이 편집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탓에 관객의 감정 이입이 어려워진 것만은 확실하다. 게다가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엇갈린 세 남녀의 사랑은 예상 범위 안에서만 돌고 돌아 긴장감이 떨어진다.
반면 1940년대 경성으로 들어간 한효주와 천우희의 연기는 빛난다. 특히 꿋꿋한 캔디 역할만 도맡았던 한효주의 연기 변신이 놀랍다. 그는 복사꽃처럼 예쁘고 순수했던 시절부터 친구와 애인에게 배신당한 후 경무국장(박성웅)에게 모든 걸 내어주기까지의 감정 변화를 촘촘하게 그려낸다. 한효주에게 이토록 다양한 표정이, 다양한 얼굴이 존재했는지 놀라는 지점이 자주 생긴다. 박성웅, 장영남, 류혜영, 차지연의 존재감 역시 크고 단단하다.
아름다운 미장센도 ‘해어화’의 분명한 장점이다. 앞서 지난해 개봉한 ‘협녀, 칼의 기억’에서도 수려한 미장센으로 관객의 눈을 즐겁게 했던 박흥식 감독은 이번에도 제 장기를 확실히 살렸다. 미술, 의상, 촬영 구도 그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신경 쓴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무엇보다 근대 문물과 조선 고유의 문화가 혼재된 1940년대 당시 상황을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남다른 감각과 능력을 입증했다.
다만 안타깝게도 박흥식 감독의 남다른 감각은 마지막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한효주의 노인 분장을 놓고 하는 말이다. “한효주가 처음부터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그렇게 쌓인 감정을 다른 배우한테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는 박흥식 감독의 뜻은 이해하나 동의할 수는 없다. 해당 장면을 확인한다면 더욱 그렇다. 노인 분장 문제를 놓고 오간 설전(?)에서 한효주가 패했다는 게 두고두고 아쉬울 따름이다.
한편 이 영화에서 한효주는 정가 명인, 천우희는 가수가 돼 노래를 부른다.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관객의 시선을 스크린에 잡아 놓기에는 충분한, 훌륭한 실력이다. 오는 1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