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60% 여성 배정키로 했는데 뒷번호 배치하거나 비율 무시
[뉴스핌=정재윤 기자]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의 여성 할당제를 공언해온 여야가 실제 비례대표 후보 추천 시에는 ‘꼼수’를 부리거나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여야는 각각 혁신안과 당헌에서 비례대표 공천시 여성 비율을 60%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지난 2월 3일 국회에서 열린 20대 총선 여성 예비후보자 대회에 참석, 여성 예비후보자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새누리당은 당내 보수혁신위원회가 결의안을 발표,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의 6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한다는 내용의 여성 후보자 의무 할당제를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23일 확정된 새누리의 비례대표 명부 45인 중 여성 후보는 전체의 60%인 27명이 선출돼 형식적으로는 혁신안을 지킨 모양새다. 하지만 당선 안정권인 20번 내에는 50%인 10명의 여성 후보만 포함됐다.
여성 후보 할당량을 채우기는 했으나 주로 후반부에 배치하는 ‘꼼수’를 사용한 것이다.
또 혁신안에서 비례대표 순번을 ‘여-여-남’ 순으로 배정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실제로는 당선권 내에서는 ‘여-남’ 순으로 배치, 순위 후반에는 나머지 여성 후보들을 몰아 배치하는 식으로 번호를 배정해 유권자와의 약속을 깼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서영교 전국여성위원장이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더불어민주당 총선 여성예비후보자 발대식 및 전진대회에서 당 여성의원들, 예비후보들과 필승 결의 박수를 치고 있다.<사진=뉴시스> |
비례대표 후보의 60%는 여성으로 추천한다고 당헌을 제정한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더민주는 지난 23일 비례대표 명부를 확정, 36명의 비례대표 후보를 발표했으나 이 중 여성 후보는 19명으로 50%를 겨우 넘는 수준을 보였다. 그나마도 정계에서 당선 안정권으로 여겨지는 15번 이내의 여성 후보는 7명에 그쳐 50% 미만에 불과했다.
김성수 대변인은 여성 비례대표 추천 할당에 관한 당헌이 지켜지지 않은 데에 "지금 예비후보까지 43번의 표를 가지고 있으나, 후반 번호로 가면 자진 사퇴한 분이 많다. 도저히 현재 틀을 가지고 60%를 만들 수 없다"고 해명했다.
◆ 여성계 "여성 비례대표 공천 규정, 당선권 내 60%로 명문화해야"
여성 비례대표 할당제를 요구해온 여야 내부 여성계는 반발하고 있다.
새누리당 비례대표 명부가 확정된 지난 23일 새누리당 여성공동행동은 “당헌·당규에 있는 여성비례공천 규정을 당선권 안 60% 공천으로 명문화할 것을 요구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새누리당 중앙여성위원장인 이에리사 의원은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 모두가 약속을 지키고 있지 않다"며 "비례대표 후보의 60%를 여성으로 추천하기로 한 제도가 실질적이 아니라 형식적으로만 지켜진 것은 눈가리고 아웅인 셈"이라며 비판했다.
더민주 전국여성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영교 의원은 “당헌 당규에 여성을 60%를 추천한다고 확정했고, 그것은 안정권의 60%가 돼야 하는 것”이라면서 “여-남-여-남 순서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야가 이처럼 여성 비례대표 추천에 인색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2년 개정된 선거법 제47조 3항은 “비례대표 후보자 중 100분의 5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되, 그 후보자 명부 순위의 매 홀수에는 여성을 추천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했었다.
이 조항이 처음 적용된 것이 17대 국회의원 선거였으나 17대 총선부터 19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국회에 진출한 여성 비례대표는 순서대로 31명, 27명, 25명에 불과했다. 해당조항이 처음 적용된 17대는 비례대표 의석수의 50%를 넘겼으나 이후 18대와 19대국회에선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여야 모두 당헌·당규가 지켜지지 않은 데 대해서는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는 입장이다. 당헌 내에 부칙으로 당헌을 지키지 않았을 때에 대비한 내용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경우 특별한 제재를 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비례대표 후보의 여성 할당제를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당의 당헌·당규로만 규정할 것이 아니라 선거법을 통해 규정해 위반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학교 교수는 "단순하게 후보 중 여성이 일정 비율을 차지하도록 규정하기보다는 당선권 안에 일정 비율 이상 포함되도록 선거법 등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유권자들이 정치적 행동에 나서 정당들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이나영 중앙대학교 교수는 "공천 과정에서 여성 후보자 비율을 지키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평등에 대한 의식이 없는 것"이라며 "유권자들이 이러한 당에는 표를 주지 않겠다는 압박을 가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정재윤 기자 (jyju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