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및 가계 신용 확대 결연한 의지
[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유럽중앙은행(ECB)이 10일 발표한 부양책은 한 마디로 파격적이라는 평가다.
시장의 기대보다 초강수를 뒀다는 것이 이번 회의 결과에 대한 시장의 판단이다. 앞서 일부 투자자들은 부양책의 내용이 시장의 예상치에 못 미칠 가능성을 경고했지만 정책자들은 ‘통 큰’ 카드로 시장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결연한 의지를 상징하는 마리오 드라기 총재의 넥타이 <출처=블룸버그통신> |
마리오 드라기 총재는 이날 회의에 지난 2012년 7월 공동통화존의 존속을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라며 강력한 정책 의지를 내비쳤던 당시와 같은 넥타이를 착용, 결과가 공개되기 앞서 이미 눈치 빠른 투자자와 기자들은 또 한 차례 ‘바주카’를 짐작했다.
양적완화(QE)의 200억유로 확대를 포함해 이날 ECB가 내놓은 부양책은 겉보기에도 파격적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정책자들의 과감한 의지가 더욱 분명하게 확인된다.
무엇보다 기업과 가계의 막힌 유동성을 뚫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뚜렷하다. 총 4건의 4년 만기 목표장기대출프로그램(TLTRO II)은 기술적으로 ECB가 시중 은행권에 이자를 지급해서라도 민간 대출을 늘리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이다.
대출 프로그램에는 이번에 0%로 인하된 ECB의 기준금리가 적용되며, 보다 적극적으로 대출을 시행하는 은행권에는 할인율을 적용할 방침이다.
따라서 은행에 따라 TLTRO II의 대출을 시행하기 위한 자금을 최저 마이너스 0.4%의 금리에 제공받을 수 있게 된다.
기업들의 투자 및 고용과 민간 소비를 회생시키고, 이를 통해 내림세로 돌아선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리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깔린 결정으로 해석된다.
QE 프로그램의 매입 대상 자산에 비금융권 투자등급 유로화 표시 회사채를 포함시킨 것도 투자자들을 놀라게 했다.
유로화 동전 <출처=AP/뉴시스> |
독일을 필두로 일부 회원국의 경우 ECB가 기존의 QE 규정에 따라 추가로 매입할 수 있는 국채 물량이 한도에 근접, 자산 매입 프로그램의 운영이 근본적으로 막히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다.
이날 회의에 앞서 일부 투자은행(IB)이 가능성을 점쳤지만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 지나치게 과격하다는 논란이 일었고, 이를 예측했던 투자자들조차 당장 이달 시행을 결정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번 주 유럽에서 커버드 본드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수익률에 발행된 가운데 같은 현상이 회사채 시장에도 등장할 것으로 투자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ECB가 매입할 가능성이 높은 회사채가 이미 IB들 사이에 공공연히 회자되기 시작했고, 일부 자산운용사들은 관련 채권에 베팅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ECB의 우량 회사채 매입 결정에 따라 투기적인 거래가 폭증, 수익률 급락과 시장 왜곡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편 ECB는 경제 성장률과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큰 폭으로 하향 조정, 유로존 안팎의 경제 펀더멘털을 현실적으로 반영했다.
ECB는 올해 유로존 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7%에서 1.4%로 내렸고, 2017년 전망치 역시 1.9%에서 1.7%로 낮춰 잡았다. 2018년 성장률은 1.8%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인플레이션 전망치는 1.0%에서 0.1%로 대폭 떨어뜨렸다. 다만 2017년과 2018년 전망치를 각각 1.3%와 1.6%로 제시해 물가가 탄탄한 상승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다만 이번 회의에서 ECB는 시장이 예상했던 ‘다중 금리시스템’은 채택하지 않았다. 당초 일부 투자자들은 일본은행(BOJ)과 흡사한 형태로 은행권 지급준비금에 적용하는 금리를 차별화할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기준금리가 현 수준 또는 이보다 낮은 선에서 장기간 유지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QE 프로그램 종료 이후까지 지속될 수 있다”며 “다만 현 수준에서 금리인하를 추가로 단행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이번 회의에서 결정한 부양책을 근간으로 성장률과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