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이 한 마디가 연이 돼 상민(전도연)과 기홍(공유)은 핀란드 헬싱키 먼 북쪽의 캠프장까지 동행하게 된다. 하지만 폭설로 도로가 끊기면서 두 사람은 숲 속 오두막에 머문다. 그렇게 이들은 이름도 모른 채 서로를 안고, 이름도 모른 채 헤어진다. 그리고 8개월 후 서울, 일상으로 돌아온 상민 앞에 기홍이 다시 나타난다.
영화 ‘남과 여’는 낯선 공간에서 느낀 호기심과 묘한 동질감이 사랑으로 발전하는 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들에게 이미 평생을 약속한 동반자와 아이가 있다. 다시 말해 두 남녀는 사랑은 도덕적으로는 용납되지 않는, 불륜. 욕해야 마땅할 사랑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크린 속 펼쳐지는 이들의 사랑은 시리도록 아름답다.
이유를 묻는다면 이윤기 감독의 공이라고 밖에 답할 수 없다. 그는 윤리적 잣대가 아닌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감정에 집중했다.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불륜은 이윤기 감독의 손을 거쳐 그렇게 감성을 자극하는 사랑이 된다. 그윽하고 아련하다. 다만 불륜이건 아니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친절하지 않다는 점은 아쉽다. 설명이 자세했다면 더 많은 감정적 동요가 있었을 거라고 본다.
다행히 이런 부족한 부분은 배우들의 연기가 잘 메꿨다. 전도연과 공유는 기대 이상의 시너지로 관객을 스크린 속으로 끌어들인다. 공허함을 품은 전도연의 깊이 있는 연기는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든 상민의 행동에 설득력을 실어준다. 공유 또한 기홍의 고독한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토록 하고 싶다던 어른들의 사랑이 무엇인지, 공유는 자신의 연기로 보여준다.
‘남과 여’의 가장 큰 강점인 자연 풍광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촬영 당시 높아진 기온 탓에 제설기를 동원하고 곳곳에 CG 작업까지 해야 했으니 순탄한 과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찌 됐건 관객의 눈 앞에 펼쳐진 핀란드의 설원과 스크린을 가득 채운 자작나무 숲은 너무도 아름답다. 덕분에 그 안에 서 있는 남녀의 정서가 더욱 와 닿는다.
그리고 이처럼 아름다운 핀란드의 풍광은 영화 후반부에 한 번 더 펼쳐지며 애틋함을 더한다. 여기에 예상치 못한 결말이 그려지며 묵직하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덧붙이면 모든 영화가 그렇듯 ‘남과 여’ 역시 호불호가 가릴 수밖에 없다. 특히 이들의 사랑을 ‘불륜’으로 가둬놓고 본다면 이 영화는 그저 이유 불문 ‘사랑과 전쟁’ 영화판에 그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틀에서 벗어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25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쇼박스> 페이스북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