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잡고, 이미지 살리고, 유권자 호소까지 ‘1석 3조’
[뉴스핌=정재윤 기자] 5일에 8회.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일주일 동안 여야 3당 대표들이 전통시장을 찾은 횟수의 총합이다.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들이 장을 보는 횟수가 평균 월 4.6회라고 하니 정치인들의 '민심 장보기' 횟수는 일반인 평균을 훨씬 상회한다.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명절마다 재래시장을 찾는 것은 새로운 풍경이 아니다. 이미 서울 시내 주요 시장들은 정치인들의 단골 방문지로 유명하다.
남대문 시장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하루 차이로 앞다퉈 방문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은 설을 맞아 용산역에서 귀향객들에게 인사를 한 뒤 근방 용문시장으로 직행했다. 안철수 대표는 하루에만 시장 4곳을 도는 '시장투어'를 선보이기도 했다.
◆ 상인들과 면대면 스킨십으로 민심 ‘꽉’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시장 투어에 나서는 이유는 역시 유권자들과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이 더 많이 찾는 대형마트보다 전통시장을 찾는 횟수가 더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스킨십이 가능한 전통적인 분위기의 재래시장이 규격화된 대형마트보다 지역여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크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서울시 구로시장의 한 상인은 전통시장에서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 "아무래도 마트는 물건만 사고 나오는 곳이지만 시장에서는 주인이랑 손님이랑 얘기도 나누고 하지 않느냐"며 "선거 때가 되면 시장에 정치인 누가 왔다더라 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 얘기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같은 시장의 또 다른 상인은 "악수라도 한 번 하고 나면 마음이 조금 더 가는 게 사실"이라며 "정치인들이 와서 악수하고 얘기도 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도 하고 이 사람은 이렇더라 하고 말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 시장 음식 ‘먹방’으로 서민이미지↑
전통시장 방문으로 ‘서민’ 이미지를 강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시장 방문에서 주요한 ‘셀링 포인트’중 하나는 시장에서 판매하는 다양한 군것질거리 등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 |
왼쪽부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전통시장에서 길거리 음식을 맛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
정치인들은 전통시장을 찾을 때마다 호떡, 만두, 어묵같은 시장표 길거리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연출하곤 한다.
김무성 대표는 남대문시장을 찾아 호떡을 사먹었고,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용문시장에서 핫도그에 케첩을 듬뿍 뿌려 먹는 모습을 보여줬다. 안철수 공동대표는 시장을 방문할 때마다 전이나 한과 등 시장 음식을 상인들로부터 받아먹는 '먹방'을 선보인다.
이 때문인지 시장표 길거리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먹으며 '서민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정치인으로서는 필수적인 행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정치인들의 전통시장 '먹방'은 "(안 그러면) '이런 것도 안 하냐'라는 소리가 나오면서 부작용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민들이 정치인에게 기대하는 모습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최소한의 이미지마케팅이라는 지적이다.
◆ 핵심 투표층인 장년·노년 표심 공략
전통시장 상인과 고객의 주 연령층이 선거에 적극적인 장년·노년층이라는 점도 정치인들이 전통시장을 찾는 요인이다.
지난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연령대는 60대(74.4%)였다. 2·3위 역시 70세 이상(67.3%)과 50대(63.2%)가 차지했다. 선거를 앞두고 장년·노년층 공략이 필수적인 정치인들로선 간과할 수 없는 분석자료다.
즉 전통시장 방문은 정치인들이 서민 이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장년과 노년층 민심에까지 호소할 수 있는 일석이조 유세인 셈이다.
야권의 한 예비후보는 "시장은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는 중요한 장소 중 하나"라며 "젊은층은 출근길 인사 등을 통해 만나고, 어르신들은 전통시장 등을 찾아 인사드린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정치권의 전통시장 방문은 '일석이조' 이상의 다양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중요한 행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서민' 이미지를 강조하려는 정치인들의 시장 투어가 보여주기에만 그친다면 자칫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양승함 연세대 교수는 "정치인들에게는 상인의 손을 어루만져주는 등 제스쳐가 필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너무 의례적이고 형식적이면 곤란하다"며 "(음식을) 먹었는데 표정을 찡그린다든지, 더러운 것을 안 묻히려고 한다든지 하면 오히려 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서민적 이미지를 보여주려던 정치인들이 역풍을 맞은 사례도 여럿 있다. 지난해 영국의 캐머런 총리는 손으로 들고먹는 핫도그를 나이프와 포크로 썰어먹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김창권 한길리서치 대표는"최근 재래시장 상인들의 경제적 곤란이 심각한데, 형식적인 재래시장 탐방에 그치지 않고 상인들이 뭘 필요로 하는지 구체적으로 청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뉴스핌 Newspim] 정재윤 기자 (jyju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