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반등론 vs. 하락론의 근거는 '수급과 달러'
[시드니= 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국제유가 30달러선이 무너진 가운데 글로벌 투자은행들(IB)이 잇따라 올해 유가 전망치를 대폭 하향 조정했다. 다만 앞으로 유가 전망과 그 배경을 제시하는 전문가 시각은 첨예하게 엇갈린 상태다.
12일 자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IB들 중 전망치를 가장 대폭 수정한 곳은 바클레이즈였다. 바클레이즈는 서부텍사스산 원유(WTI)의 올해 가격 전망을 종전의 56달러에서 37달러까지 19달러나 하향조정했다. 브렌트유의 경우 전망치가 60달러에서 37달러까지 23달러나 낮아졌다.
맥쿼리도 올해 WTI 가격 전망은 53달러에서 42달러로, 브렌트유 가격 전망은 58달러에서 45달러로 내리며 "올 상반기 동안 원유 시장은 비정상적인 재고 수준과 공급 과잉 상태를 지속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시에테제네랄은 WTI는 49.75달러에서 40.50달러로, 브렌트유는 53.75달러에서 42.50달러로 올해 가격 전망치를 각각 하향했다. 분기별로는 브렌트유 가격이 1분기 중 35달러를 기록한 뒤 2분기에는 40달러, 3분기에는 45달러, 마지막 4분기에는 50달러로 평균 5달러씩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WTI의 경우 각 분기별로 브렌트유보다 2달러씩 낮을 것으로 예상됐다.
소시에테 제네랄 애널리스트 마이클 위트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공식 생산목표 합의 불발과 이란의 시장 조기 복귀, 지속적인 미국 원유 생산 등이 유가 전망치 하향의 주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새로 고개를 든 중국 및 기타 이머징 국가의 경착륙 우려도 올 1분기 집중적으로 유가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BofA는 종전에도 유가 전망치를 가장 낮게 제시한 영향에 이번 하향폭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은행은 WTI 올해 가격 전망치를 48달러에서 45달러로, 브렌트유는 50달러에서 46달러로 낮췄다.
앞서 골드만삭스가 재고 증가 전망을 기초로 해 배럴당 20달러 대 유가 전망을 내놓았고, 이어 최근 모간스탠리 애널리스트도 20달러 전망치를 제출한 바 있다. 모간스탠리는 세계 공급 과잉이 유가를 배럴당 60달러 밑으로 끌어내렸지만 배럴당 35달러 선까지 유가를 낮춘 것은 미 달러화의 강세라고 다소 다른 배경을 지목했다.
모간스탠리는 "미 달러화가 계속해서 절상될 것을 가정할 때 배럴당 20~25달러 시나리오는 단순히 통화 때문만으로도 가능하다"면서 "미 달러화와 펀더멘털 외 요소가 유가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WTI 선물 2월물은 장중 29.93달러까지 떨어지며 2003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30달러를 밑돈 뒤 30.44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선물 2월물은 30.86달러로 마감됐다.
◆ '추가 하락 vs. 반등' 전망 첨예하게 엇갈려
원유생산현장 [출처: 국제에너지기구(IEA)] |
앞서 다수의 투자은행 유가 전망치가 아래로 내려왔지만 유가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여전히 극과 극이다.
대표적인 유가 약세론자는 에드모스 씨티그룹 원자재 리서치부문 대표로, 그는 "지금의 유가 하락 추세를 뒤집으려면 공급 차질이 여러 차례 발생해야 하는데 이러한 이례적 상황이 나타나기는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공급측면에서는 2010년 이후로 캐나다와 브라질과 같은 OPEC 비회원국들이 생산을 늘리고 있으며 미국도 거의 축소에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OPEC 회원국의 경우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미 저유가 장기화에 본격 대비하기 시작했으며 이라크의 생산 급증 및 이란의 시장 복귀 등이 수급 여건을 더 암울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 보호에 대한 인식이 고조되면서 수송연료로서 원유가 갖던 독보적 지위도 점차 줄고 있다는 점도 고유가 시대로의 복귀를 어렵게 하며, 글로벌 원유 재고가 꾸준히 늘면서 에너지 업계의 비축여력이 점차 바닥나고 있어 유가는 20달러 수준까지 밀릴 수도 있다는 경고다.
월가 뉴스레터 편집인인 데니스 가트먼은 전날 CNBC뉴스에 출연, 국제유가가 배럴당 15달러까지 하락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가트먼은 모두들 지목하는 중국 경기 둔화 외에 캐나다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서부캐나다셀렉트유가 배럴당 14달러까지 떨어졌는데, 캐나다 원유 공급이 계속 증가할 것이란 예측이다.
모간스탠리의 20달러 유가 전망에 동의한다고 밝힌 그는 유가가 바닥에 머무는 기간은 상반기 중 하루 이틀 정도로 짧겠지만, 20달러보다 더 낮은 15달러~18달러 사이를 지나게 될 것이라고 봤다.
전 세계 석유 수급 균형 <자료=국제에너지기구> |
반면 폴 호스넬 스탠다드차타드(SC) 상품애널리스트는 공급중단 가능성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시장이 추가 공급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정불안을 겪고 있는 리비아 등이 공급 차질을 초래할 지정학 리스크에 대한 프리미엄이 현재 유가에는 거의 반영이 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호스넬은 일단 공급 중단 사태가 발생하면 다시 회복되는 속도나 규모는 실망스러울 것으로 보여 유가 지지요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우디 등이 일시적으로 생산을 확대할 수 있겠지만 다른 OPEC 회원국 및 비회원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작년 4월 정점을 찍은 미국의 원유 생산은 일일 50만배럴 넘게 축소된 상태이며, 올 4월이면 시장 수급 균형이 맞춰진 뒤 하반기에는 오히려 상당한 공급 부족 사태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 호스넬의 분석이다.
그는 경기 둔화로 중국 원유 수요에 대한 시장 전망이 비관적이었지만 지난해 실제 중국 수요 성장세는 6%를 넘어 전망치 2%를 크게 웃돌았다는 점을 상기하며 올해 역시 중국 수요가 살아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호스넬은 지금 추세로 보면 유가가 배럴당 10달러선까지도 내려갈 수 있지만, 펀더멘털한 근거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모멘텀 플레이에 의한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뉴스핌 Newspim] 권지언 시드니 특파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