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세상 모든 것에는 순서라는 게 있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만나고 호감을 느끼고 고백하고 사귀고 사랑하고. 정답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녀가 사랑한다면 지켜야 할 암묵적인 룰이다.
그런데 여기, 이 규칙을 깬 이들이 있다. 첫 만남에 몸을 섞고 썸을 타고 사랑을 한다. 3일 개봉한 영화 ‘극적인 하룻밤’은 ‘몸친’이 ‘맘친’이 되는 과정을 담은 로맨틱 코미디. 동명의 연극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연애하다 까이고, 썸타다 놓치는 연애 을(乙) 두 남녀가 ‘원나잇 쿠폰’을 만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간 영화 ‘6년 째 연애 중’(2007), ‘레드카펫’(2014)을 통해 ‘현실 남친’의 표본을 보여준 배우 윤계상(37)이 영원한 연애 을 정훈을 연기했다.
“20~30대 청춘의 찌질한 과정을 담으면서도 진실한 사랑을 쫓아가는 이야기가 참 좋았어요. 유치하지만 설레고 풋풋했죠. 물론 누군가는 이상하다고 하겠죠. 하지만 사랑의 과정은 너무 다양하고 각기 다르니까요. 이것 역시 사랑의 방식 중 하나죠. 상처가 많은 사람한테 방법이 될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 사랑해본 사람이라면 그 아픔에는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극중 윤계상이 연기한 정훈은 용기가 부족한 요즘 남자다. 이 시대의 쿨남을 지향하지만, 연애에 있어서는 쿨하지 못한 연애 하수.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에 연애에 도통 자신이 없다. 윤계상은 그런 정훈을 두고 이 세상 남자의 대표적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뭔가 되고 싶고 증명하려 하는데, 자신감이 없는 게 그렇죠. 20대 때 저와도 비슷하고요. 저도 그땐 어른이니까 모든 걸 다 통솔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사랑까지도. 그래서 일과 사랑의 비율도 정해놓고 계산했어요. 당연히 지금은 아니죠. 뭐든 자연스럽게, 확실히 서로 원하는 거에 충실하니까 편해진 느낌이에요. 더 여유가 생겼죠.”
스스로는 정훈과 많이 닮았다고 했지만, 사실 20대의 윤계상은 정훈과 달리 최정상에 서 있었다. 그가 속한 그룹 god는 각종 연말 가요대상을 휩쓸었고 거리는 온통 하늘색 물결이었다. 연기로 전향하면서 다소 흔들리는 듯했지만, 이내 그럴싸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면 대체 십여 년 전의 윤계상은 뭐가 그토록 자신 없고 불안했을까.
“어릴 땐 생각이 많았어요. 아이돌을 오래 할 수 있을까, 계속 사랑받을 수 있을까 두려움이 컸죠. 연기 시작하고도 그랬고요. 너무 잘하고 싶으니까 불안했던 거예요. 근데 연기를 해보니 악기랑 비슷하더라고요. 기타 코드를 잡고 의식 없이 연주하는 데 몇 년이 걸리잖아요. 그땐 연습의 시간이던 거죠. 이제야 조금 연주할 수 있게 됐고, 제 장단점을 알았으니 연주를 잘 해봐야죠(웃음).”
윤계상이 자신의 연주에 애용하고(?) 싶은 장점은 평범함이다. 이번 영화에서 보여준 바로 그 모습. 고개를 돌리면 한 명쯤은 옆에 있을 법한(물론 현실은 다르겠지만) 얼굴과 친근함은 예나 지금이나 그의 가장 큰 무기다.
“찌질한 역할이 잘 어울린단 게 그런 의미 아닐까요? 대중에게 부담 없는 비주얼을 갖고 있잖아요. 만일 정훈을 전형적인 미남 배우가 했다면 거부감이 들었을 거예요. 너무 영화 같아서(웃음). 어쨌든 이런 평범함 덕에 어떻게 스타일을 바꿔도 무난하게 섞이는 장점이 생겼죠. 거지 분장을 하면 거지 같고 바보 분장을 하면 바보 같고. 거기에 어우러지는 거죠.”
그렇다면 그간 만들어 온, 혹은 그려낼 수많은 모습 중 배우로서 기억되고 싶은 단 하나의 이미지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워낙에 극과 극 캐릭터를 오가는 배우인지라 답변을 예상하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윤계상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없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원한다고 그렇게 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이게 리얼 예능과 비슷해요. 제 이미지, 색깔은 제가 만드는 게 아니라 드러나는 거예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이라도 알잖아요? 그런 거죠. 물론 과거엔 인정받고 싶어서 억지로 암울하고 어려운 작품을 계속 잡기도 했죠. 하지만 다 들통 났어요(웃음). 그것 또한 윤계상이지만, 애쓰지 말란 말을 너무 많이 들었죠. 그때 거짓말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억지로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란 걸 깨우치면서 자연스럽게 내려놓음도 배웠다. 그러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모든 걸 즐길 수 있게 됐다. 영화 홍보에 god 콘서트 연습 그리고 예능 출연까지, 요 며칠 계속되는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 그가 행복해 보이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 좋은 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그냥 정말이지 좋아요. 그저 배우로서 목표가 있다면 이 좋은 연기를 꾸준히 하는 거죠. 자식이 생길 때까지. 좋아하는 일을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얼마나 감사해요. 압박이나 부담은 없어요. 너무 피곤해서 정말 떠나고 싶을 때가 오면 그때 떠나면 되니까. 우리 영화에서도 그러잖아요. 두려워하지 말고 뭐든 용기를 가지라고(웃음).”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