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제한했지만 중소기업 매출 늘지 않고, 소비자후생 감소
[뉴스핌=정경환 기자] 이명박 정부 시절에 도입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에 대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가 시장의 성장을 제한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KDI는 16일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포장두부시장에 미친 영향'이라는 보고서에서 "중기 적합업종제도는 제품 수준의 사전 조사와 사후 분석을 바탕으로 보다 정교하게 운영돼야 한다"며 "해당 업종에 대한 이해 없이 제한조치를 가할 경우 오히려 중소기업의 수익을 감소시키고 소비자 후생까지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기 적합업종제도는 대기업의 진입 또는 확장을 제한해 중소기업의 성장을 유도하기 위해 2011년 도입됐다. 제도가 시행된 지 3년이 흘렀지만 정책의 실효성 논란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을 보호하려다 오히려 시장이 위축됐다'며 적합업종 해제를 주장하는 반면, 중소기업들은 그들의 생존권 보호를 위해 재지정(보호기간 3년 연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지난 3년간의 보호기간이 끝난 82개 업종을 중심으로 재지정에 관한 첨예한 찬반양론이 오갔고, 결정시한을 수개월 넘겨서야 재지정 33개 업종, 해제 49개 업종으로 마무리됐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진국 KDI 연구위원은 "대기업의 주장대로 시장규모가 축소됐는지, 그렇다면 그것이 적합업종제도의 영향 때문인지, 제도 시행 후 기업들은 어떠한 전략으로 대응했는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수익 변화는 어떠했는지 등 논란의 핵심 사항에 관한 사전 검증과 사후 분석이 미흡한 상황에서 적합업종 지정과 재지정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DI는 적합업종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포장두부제조업에 초점을 맞춰 분석했다. 그 결과 적합업종제도로 매출액을 제한당한 대기업들은 그동안 특화해 온 국산콩 두부 생산을 감축하고 수입콩 두부 생산을 확대했다. 이는 수입콩 두부를 주력으로 삼아 온 중소기업들의 수익을 저해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소비자들이 선호하던 국산콩 두부의 생산감소로 인해 소비자 후생도 하락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연구위원은 "중기 적합업종제도 시행 이후 포장두부시장에서 대기업의 매출액 증가세가 둔화되거나 감소세로 전환됐지만, 중소기업 매출액은 제도 시행 전과 비교해 뚜렷한 변화가 관찰되지 않는다"며 "적합업종제도가 대기업의 매출액을 제한해 포장두부시장, 더 나아가 두부시장의 성장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림=한국개발연구원> |
풀무원, CJ, 대상, 아워홈 등 대기업들의 포장두부 매출은 2005년 총 1338억원에서 2012년 3272억원까지 늘었다. 하지만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된 후 증가세가 꺾여 2013년 3038억원으로 떨어졌다. 중소기업의 포장두부매출은 2005년 251억원에서 2011년까지 617억원으로 증가했다가 2012년 547억원으로 감소했다. 이후 2013년 658억원으로 소폭 늘었다.
포장두부제조업은 지난 3년간의 보호기간이 만료되어 올 2월 재지정 심사를 거쳤다. 그 결과 수입콩 포장두부는 재지정됐고 국산콩 포장두부는 적합업종에서 해제됐다. 제도 시행 후 대기업들이 국산콩 수매량을 줄인 결과 콩 가격이 하락해 콩 생산 농가들의 피해가 발생했는데, 이것이 국산콩 두부가 적합업종에서 해제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이 연구위원은 "대기업들이 국산콩 포장두부시장을 창출했고 그로부터 상당한 수익을 거둔다고 해도 매출액 제한이 가해지면 생산유인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반면, 수입콩 제품은 가격이 저렴해 매출액 제한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우면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 대기업들은 수입콩 제품의 판매 비중을 적극 증가시킨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대기업에 대한 매출액 제한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 판매량이 정체된 것도 대기업들이 수입콩 제품 비중을 확대하면서, (중소기업들이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는) 수입콩 제품 시장의 경쟁이 증가했기 때문"이라며 "대기업의 매출액을 제한하면 그것이 곧 중소기업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정책적 기대가 현실화되지 않은 것은 이와 같은 기업전략과 시장메커니즘을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즉, 포장두부시장에서 적합업종제도의 취지가 구현되지 못한 근본 원인은 대기업들이 시장제약에 대응해 제품전략을 변경한 것에 있다. 제품 특성의 변화는 시장의 경쟁양상과 소비자 구매결정에 영향을 주고 결국 기업 수익의 변화로 연결되는데, 이 같은 이해 없이 제한조치를 가할 경우 오히려 중소기업의 수익을 감소시키고 소비자 후생까지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연구위원은 "적합업종제도는 철저한 시장분석을 바탕으로 보다 정교하게 운영돼야 한다"며 "소비자들이 실제 구매하는 제품과 제품 특성을 대상으로 사전 시장조사와 사후 효과분석을 수행하고 그 결과는 적합업종 지정 논의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철저한 사후 분석을 바탕으로 포장두부시장과 같이 제도 시행 후 시장규모가 축소되고 중소기업의 수익이 감소한 업종은 적합업종 재지정에서 배제해야 한다"며 "또한, 사전 조사 결과 대·중소기업 제품이 차별화돼 대체성이 낮다고 판단되는 업종은 신규 적합업종에 포함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뉴스핌 Newspim] 정경환 기자 (hoa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