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양진영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아시아 초연 오페라 '안나 볼레나'가 깊은 감동으로 국내 관객을 찾아온다.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산 왕비 앤 불린, 16세기 영국 튜터가의 군주 헨리 8세와 더불어 사랑, 권력으로 이어진 조반나, 퍼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는 28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아시아 초연되는 오페라 ′안나 볼레나′의 주역들을 만났다. 뉴스핌의 첫 오페라 소개작 '안나 볼레나'의 또 다른 주역, 메조 소프라노 최승현, 테너 이상준과 이야기를 나눴다.
메조 소프라노 최승현과 테너 이상준은 앤 불린, 헨리 8세와 촘촘한 인연으로 엮이는 조반나 세이무어, 퍼시 역으로 무대에 선다. 조반나는 왕비 앤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헨리 8세가 후사를 위해 선택하는 여인이고 퍼시는 앤이 왕비가 되기 전, 그녀를 사랑했던 뜨거운 열정을 가진 남자다.
"'안나 볼레라'를 지난 2013년에 폴란드에 우치시립오페라극장이란 곳에서 공연 했었어요. 그 이후로 2014년, 2015년까지 세 시즌을 연이어 하게 됐죠. 지난해 라벨라오페라단에서 '안나 볼레나'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단장님께 연락을 취했고, 제가 경험이 있으니 이 오페라를 통해 한국에서 데뷔하고 싶다고 어필했어요. 제겐 사실 최고의 기회죠. 익숙한 작품도 좋지만 좀 더 특이하게 초연되는 작품에서 힘든 배역을 멋있게 무대에서 소화해낼 수 있다면 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지난 10월말 세종문화회관 독주회를 했으니, 말하자면 국내에선 뉴페이스고 감독님과는 '윈윈'인 셈이죠." (이상준)
"사실 메조 소프라노는 오페라 자체에서 타이틀롤인 경우가 많지는 않아요. 조역이 많고, 주역으로는 '카르멘'을 주로 해왔죠. 6년 정도 한국에서 활동하며 도전할 수 있는 오페라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카르멘'보다 더 난이도가 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던 중에 단장님이 전화가 오셔서 캐스팅 제의를 하시고 잘 어울리겠다고 해주셔서 굉장히 기뻤고요. 어렵고 마음에 부담은 되지만 열심히 해보고 싶어요. 걱정이 많긴 해요. 워낙 이게 테크닉적으로 고난도인데다 캐릭터상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달까요. 조금 낯설지만 말 그대로 도전적인 역할이죠." (최승현)
앤 불린(안나 볼레나)과 헨리 8세와 더불어 '안나 볼레나'의 주역이 되는 조반나 세이무어와 퍼시는 사실상 무대에서 마주치지는 않는 캐릭터다. 조반나는 헨리 8세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아주 계산적인 인물이지만, 퍼시는 반대로 앤을 사랑하는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열정적인 사랑 탓에 목숨까지 잃게 되는 일명 '사랑꾼'이다.
"퍼시 역은 조반나와 전혀 부딪히진 않아요. 헨리 8세와 조반나의 관계가 있고 저는 원래 안나와 사랑하던 사이죠. 헨리 8세가 안나를 자기의 여왕으로 갖기 위해서 페리스를 유배를 보내는데, 뒤늦게 모든 사실을 알고 마음 아파하죠. 안나를 계속해서 사랑하지만, 안나는 퍼시와 관계를 계속 부정해요. 불륜을 의심 당하고 들켰을 때조차 모른척하죠. 결국은 혼자 사랑에 모든 것을 건 바보예요. 안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바람에 모두가 죽게 되죠." (이상준)
"조반나는 안나와는 너무 다른 여자예요. 안나는 어떻게 보면 감정에 충실하고 휘둘리기도 하지만 조반나는 철저하게 계산적이죠. 그래서 캐릭터 잡기가 조금 어려워요. 얘의 심리는 뭘까. 전형적인 영국 여자 느낌이랄까요. 어쨌든 모든 곡과 모든 장면에서 굉장히 계산적이고 냉정한 인물이고 상황마다 입장을 바꾸면서도 충실한 인물이죠. 말을 듣지 않는 안나에 비해 1막에선 왕을 달래는 엄마같은 여자였다가 왕이 발끈하면 납작 엎드리기도 하는, 영악한 여자예요. 왕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으면서도 눈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딴 생각을 하는 연출이 있어요. 조반나의 특색을 잘 나타내죠" (최승현)
일회적으로 소비되는 음악 시장과 그에 따라 더더욱 자극적으로 변해가는 대중 음악에 비해, 오페라는 꽤 오랜 시간 꾸준히 사랑받아온 장르다.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가들에게 오페라만의 차별성과 장점을 자연스레 묻게 됐고, 어김없이 자긍심을 드러냈다.
"요즘 음악은 사실 굉장히 자극적이고 점점 더 그렇게 됐죠. 걸그룹도 마찬가지고 1차원적인 느낌 위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오페라는 어쨌건 우리 목소리로 모든 걸 전달하니까요. 그래서 가장 순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도구를 써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울려서 기술적인 부분과 감정적인 희노애락을 표출하기 때문에 굉장한 자긍심을 갖고 있죠." (최승현)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시간이 중요하죠. 그 시간에 뭐가 일어나고 어떻게 끝나느냐를 직접 볼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축구 경기를 가서 관전하는 걸 기대하지만 끝난 게임을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되지는 않죠. 이미 경기 내용을 다 알고 있으니까요. 오페라도 마찬가지예요. 직접 찾아와서 봐야만 그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죠. 어떻게 보면 한 판 승부같은 그런 예술이라고 설명하고 싶어요." (이상준)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것과는 별개로, 오페라 자체에 더 많은 대중이 관심을 갖고 즐겨주기를 바라는 건 비단 두 사람 뿐 아닌 업계 모두의 소망일 듯 하다. 테너 이상준은 "부산 사람인데 부산엔 오페라 극장이 없다. 자주 접하게 되면 아무래도 더 들여다보고 관심도 갖게 된다. 그런 지원이 아쉽다"고 했다. 메조 소프라노 최승현도 "익숙한 것만 하는 건 발전 여지가 없어지는 거다. 드라마나 영화도 계속해서 다른 버전이 나오듯 오페라에서도 각자 다른 배우의 해석을 즐겨보는 게 좋을 거다"라고 조언했다.
"'안나 볼레나'가 초연이고, 어려운 작품인 만큼 부담이 커요. 바람이 있다면 비평과 비판만은 마시고 첫 시도고 많이 안하는 작품, 난이도가 있는 극이니까 얼만큼 잘하나보다는 저런것도 올릴 수 있구나하고 즐겨 주셨음 합니다. 이 공연 이후엔 '카르멘'으로 또 인사드릴 것 같고요. 요즘 '오지로 가는 음악회'라는 공연에 국립 오페라단과 참여하고 있는데 마음에 굉장히 보람을 느껴요. 거기선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음악을 들으시고 할머니들이 감동받았다고 하시고 하니까 제게도 뜻깊죠. 그런 공연으로 많은 분들을 만나고 싶네요." (최승현)
"무엇이든 즐기러 오시는 게 좋아요. 경기를 보러 갈 때도 '지나 안지나 두고보자'하고 가지는 않잖아요. 오늘 '안나 볼레나' 한다던데! 어떤가 보자!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오시길 바라요. 오는 1월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베토벤 라인 심포니에 참여할 것 같아요. 신년 음악회인데 처음 도전해보는 공연이에요. 이후 포르투갈과 폴란드 등 유럽에서 시즌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이상준)
이태리에서 첫 만남,'안나 볼레나'에서 재회한 최승현과 이상준 오페라 '안나 볼레나'를 벌써 세 번째 공연하게 된 테너 이상준과 첫 도전에 부담감을 내보인 메조 소프라노 최승현은 사실 초면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인터뷰 도중, 10여년 전 이탈리아에서 같은 스승께 사사받았음을 털어놓으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 더욱 풍성한 공연이 될 것 같은 예감을 느끼며 '안나 볼레나'가 어째서 어려운지, 왜 더 가치있는 지를 상세하게 들어봤다. "최승현 선생님과는 2002년에서 2003년 사이에 이태리에서 같이 공부했어요.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가 태어난 부세또라는 도시가 있는데 그곳에 가면 베르디 오페라 극장이 있죠. 거기 아카데미에서 1년간 같은 선생님 아래서 사사를 했던 사이입니다. 이후로는 13년 동안 못보다가 여기서 만났어요. 먼저 선생님이 귀국해 활동하고 계시고 저는 유럽에서 홀로 활동해왔죠. 이렇게 다시 만나니 정말 좋습니다. 여전히 아름다우시고 그때도 유일한 메조 소프라노였어요." (이상준) "저도 처음에 만나서 '어디서 봤지' 했어요. 그 때 기억이 나면서 반갑고, 사사 받았던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났죠.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보시면 기뻐하실 것 같고요. 알랭 비아르뜨라고 유명한 성악가들 배출해내신 훌륭한 마에스트로시죠. '안나 볼레나' 연습을 하면서 그동안 안내왔던 고음이나 안써왔던 근육들을 하나 하나 일깨워가면서 펼쳐 보이는 느낌이 들어요. 여기서 다 보여줘야 되는구나 싶고요. 사실 처음의 목표가 완창일 정도로 힘들었거든요. 감사한 건 공부를 하면서 제게 도움이 많이 되는 작품이고, 이걸 해내면 더 어려운 역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기회죠." (최승현) "베르디와 푸치니 작품이 국내에서 익숙한데, 여기선 테너는 테너, 소프라노는 소프라노 등 파트 음역대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죠. 하지만 이번엔 파트 별로 음역대가 조금씩 달라지는 경우가 잦아요. 오케스트라도 웅장하기보다 노래만 잘 들릴 수 있도록 반주 정도의 역할만 하고요. 그래서 소리가 더 잘 들리고 숨을 데가 없죠. 정제되지 않은 소리는 바로 들켜요. 옷 벗고 무대에서 노래하는 기분이고, 정말 소리에 욕심이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절제된 소리로 불러야 해요. 항상 내가 해낼 수 있을 지 도전의식이 생기죠. '모 아니면 도'라는 마음으로 무대에 오릅니다." (이상준) |
[뉴스핌 Newspim] 양진영 기자(jyyang@newspim.com) ·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