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주말드라마 '여자를 울려' 촬영과 종방연을 막 마치고 온 김정은과 인터뷰는 한없이 유쾌했다. "아직도 인터뷰 하고 있으니까 끝난 게 실감이 안나요"라고 웃는 그의 표정이 밝았다. 체력 고갈과 감정 소모에 시달려온 시간들이 언제였냐는 듯 몸도 마음도 가벼워보였다.
'여자를 울려'의 마지막을 장식한 건 덕인(김정은)과 진우(송창의)의 결혼식이었다. 모든 사건들을 정리하고, 어쩌면 그 결혼식 장면을 위해 40부작의 드라마를 끌고 온 셈이다. 김정은은 중간 중간 숱하게 힘든 날들이 많았지만 고공행진하는 시청률 덕에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음을 털어놨다.
"시청률이 잘 나와서 기분은 정말 좋았어요. 아무래도 현장의 사기와 직결되는 문제기 때문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고, 이번엔 더 책임감이 들기도 했어요. 똑같은 주연이어도 20개 이끌어가는 거랑 40개 이끌어 가는 거랑 다르더라고요. 산 처럼 올곧게 가야지 하는 마음에 스스로도 성장한 것 같고요. 일단 성적이 좋으니까 MBC에서 매일 회식비 주시고.(웃음) 포상 휴가도 보내주시고 해서 더 없이 행복한 선물을 받은 것 같네요."
사실 김정은은 3년의 긴 연기 공백을 가졌지만, 자타공인 '로코의 여왕'이다. 덜렁거리고 코믹한 요소와 함께 멜로와 로맨스를 맛깔나게 살리는 여배우론 그를 따를 자가 없다. 그런 그에게 이번 작품은 자식을 잃은 엄마로서, 유난히 감정 소모가 많았기에 매일이 고난의 연속이었다.
"처음에 시놉 받았을 때 깜짝 놀랐어요. '뭐 이런 내용이 다 있어?' 싶기도 하고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내 자식 죽인 놈 아버지랑? 너무 힘들 거 같아'했죠. 사실 말이 되나요? 궁금해서 만났어요. 결정을 하고 나서는 스스로 발목이 잡혔어요. 내심 한 편으로는 '아직 모르고 있다. 오지마 오지마' 하고 그 시간이 다가오는 걸 두려워했어요. 이렇게 온전히 몸으로 공포스러운 적은 없었는데 괴로운 정덕인이었죠."
그토록 김정은을 힘들게 했던 덕인은 사실 '보살'이나 '성자'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심성의 여자다. 자신을 버린 엄마도, 바람을 피운 남편도, 자식을 죽인 원수도, 그 아버지까지 사랑으로 용서했다. 아무리 할 말을 다 하고 소리를 마구 질러 감정을 배출하는 캐릭터라 해도,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라는 막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고스란히 느껴내야 했다.
"서서히 목을 졸려오는 느낌이 처음부터 있었죠. 덕인의 입장에서 '나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조차 못해봤어요. 아직도 완벽한 용서를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마지막에 덕인이 '용서를 할 수 없어도 사랑은 할 수 있다. 나는 사랑을 하고 있고 용서를 하고 있다'고 말해요. 용서를 하고 있다는 건 잘 쓰지 않는 말이잖아요. 정말 쉬운 게 아니구나. 결국은 계속 안고 갈 숙제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작가님이나 제작진이 다양한 생각할 거리, 쉽게 결론낼 수 없는 문제를 계속 던졌던 것 같아요."
상대역인 송창의도 그랬듯, 김정은도 덕인을 머리로나마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끊이지 않았던 막장 논란에 대해 그는 "시청자들이 아쉬워하는 부분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하며 "보기에 불편하셨다면 저희가 죄송하다"고 선(先) 사과를 하고 나서 인터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사실 시청자들이 답답해하는 부분이 어떤건지 너무 잘알아요. 다들 제 감정을 따라올 수밖에 없잖아요. 막장이라고 느끼셨다면 저희가 사과를 해야죠. 제가 대신 사과 드릴게요. 누구든 고민하고 짚고 다시 한 번 넘어가야 할 문제겠죠. 막장과 웰메이드의 차이는 개연성인데 그 부분이 잘 안보였다면 아쉽죠. 나름대로 쌓는다고 쌓아왔거든요. 하지만 막장과 뻔한 얘기는 조금 다르게 봐 주셨으면 해요. 뻔한 얘기는 가족의 얘기, 사랑 얘기고 세기를 막론하고 반복되죠. 누구나 좋아하고 즐기고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죠. 그 뻔한 얘기가 얼마나 디테일하게 개연성이 있느냐가 훌륭함을 판가름하는데, 그게 정말 종이 한 장 차이가 될 수 있다는 게 조심스런 부분이에요."
'여자를 울려' 시청자들에게 가장 깊이 각인된 장면은, 역시 정덕인의 "내 아들 살려내!"라고 오열하는 신이다. 이번 작품을 통해 김정은은 길었던 연기 공백과 그 갈증을 모두 해소했다고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오랜 연기 경력에도 늘 품고 있던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하는 고민까지 모두 내려놨던 순간이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저 어떡해요' 하니까 '널 놓으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정말 그 때 잠깐 기절한 것 같아요. 말을 하고 있는데 뭐라고 했는지 기억도 안나요. '내 아들 살려내!'를 총 열 세 번 했다는데 몰랐어요. '괜찮다. 네 뒤에 몇 천 만의 엄마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까 마음이 든든했죠. 내가 엄만데 어쩔 거야? 하는 기분으로, 엄마란 자격증을 가진 것처럼 모든 장소에서 되게 당당하고 용기있게 굴었어요. 난 엄마다.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엄마다. 그렇게 되뇌기도 했고요. 정말이지 혼자 스포트라이트 받는 1인극 하는 것 같았다니까요. '그래 네 연기 어디 한번 보자'하는 앞에서 벌거벗은 것 같았죠."
김정은은 이제 더 이상 겁나는 역할도 없다며 시원하게 웃었다. 이제 20년차를 맞은 여배우지만 올드한 연기 노하우를 고집하고 싶지 않다는 그에게 어쩌면 가장 필요한 작품, 필요한 역할이었다. "당분간은 쉬고 싶다. 이번엔 3년까지는 아닐 거다"라고 웃는 김정은을 지켜온 건 오래된 그만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작품 하나와 역할 하나에도 한계를 두고 싶지 않다는 대답이 더욱 김정은의 차기작을 기다리게끔 했다.
"다른 건 겁도 안나요. 더한 게 있을까요? 벗으라면 좀 그렇겠네요. (웃음) 덕인 역이 제 연기에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했어요. 내 거 고집 안하고 다 버리고 정말 솔직하게 연기했거든요. 올드한 스타일이나 가지고 있는 건 다 나쁜 버릇처럼 느껴져요. 다시 시작하는게 가장 나를 위해 좋은 거란 생각도 하죠. 작품도 그래요. '주말에 어디까지 가족들이 보기 편함을 위한 어느 정도의 흥미 요소를 가지고 만들 것인가'. 제작진이나 배우들이 항상 고민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왜 막장이란 얘기가 나오는지 그게 안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요. '주말극은 이래야 해'하고 단정을 짓는 게 한계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공개 열애' 김정은 "금요일마다 만난다고 놀림 받았어요" '여자를 울려'에서 송창의와 호흡이 돋보이기는 했지만, 김정은은 촬영 도중에 '강제 공개 열애'를 당했다. 일반인인 남자 친구를 배려해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연기를 하며 답답했던 순간 언제나 힘이 됐음을 고백했다. "저 스태프들한테 너무 놀림당했어요. 사진 찍으신 기자분이 금요일마다 만난다고 그래서 '오늘 안만나요?'라고 다들 놀리고. (웃음) 이제 드라마 끝났으니까 열심히 해서 좋은 소식 있으면 알려 드릴게요. 사실 드라마 하면서 남자친구에게 굉장히 많이 위로를 받았어요. 다 거기서 풀고 회복하고 위로받고 그랬죠. 그게 굉장히 중요해요. 여배우들은 정신적으로 항상 시달려도 당당하게 정신과를 방문할 수 없는 처지예요. 저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해소할 수 있는 방법들이 하나씩 있을 거예요. 오뚜기같이 다들 회복하고 극복하고 또 하나 도전하고 있을 거예요. 여러분들이 사진 같은 것도 좀 안찍으시고 지켜주시면 좋겠어요. (웃음)" |
[뉴스핌 Newspim]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 [사진=별만들기이엔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