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그가 변했다고 했다. 말 그대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나니 달라졌다는 의미다. 지난해 여름 서울예술대학 동기들이 예능프로그램에 나와서 한 말이 예기치 않게 커졌다. (물론 그는 여전히 겸손했지만)당사자들이 아니기에 누구의 말이, 그리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는 게 있다. 연기하는 류승룡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류승룡은 대학 시절 무대에 오르던 순간처럼 여전히 연기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연기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매 순간 진지했고 신중했다. 질문 하나도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었다. 내뱉는 단어도 꼼꼼히 골랐다.
배우 류승룡(45)이 지난 9일 신작 ‘손님’을 선보였다. 독일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모티브를 차용한 영화는 약속을 잘 지키자는 동화 속 주제를 고스란히 담은 판타지 호러다. 1950년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산골 마을로 들어선 낯선 남자와 그의 아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숨기려 했던 비밀과 쥐들이 기록하는 그 마을의 기억을 다뤘다.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출연을 열망했어요. 꼭 하고 싶었죠. 그동안 보지 못했던 미장센도 좋았고 ‘약속을 지키자’는 일차원적인 교훈 이면에 숨겨진 다양한 이야기와 교훈도 끌렸어요. 개인은 물론 사회나 단체에 대입해도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인간의 이기주의, 편견으로 인한 집단 광기를 비유와 상징으로 풀어낸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어요.”
극중 류승룡이 연기한 인물은 피리 부는 절름발이 우룡.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떠돌이 악사다. 극 초반 아들 영남(구승현)과 우연히 들어간 산골 마을에서 쥐떼 소탕을 부탁받으면서 우룡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동시에 우룡의 감정 역시 큰 폭으로 변화한다.
“차라리 후반부는 연기하기 쉬웠어요. 분장이나 음악, 조명, 의상 등의 장치로 제 연기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잖아요. 오히려 전반부는 액면 그대로 저를 드러내야 해서 힘들었죠. 과하면 오버고 부족하면 아쉬우니 그 경계를 찾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산에서 힐링하면서 찍어서 참 좋았어요. 날짜별로 열리는 장에 가서 약초도 사고 목욕탕도 갔죠(웃음).”
이번 영화에서는 류승룡의 급변하는 감정 연기만큼이나 놓치지 말아야 할 관람 포인트가 있다. 실제 부자 관계를 뛰어넘는 류승룡과 구승현의 케미스트리다. 앞서 ‘7번방의 선물’에서 딸 예승(갈소원)을 향한 부성애로 1000만 관객의 심금을 울렸던 류승룡은 ‘손님’에서는 아들 영남을 향한 부성애로 관객들을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저라서 특별한 게 아니라 ‘7번방의 선물’이 주목받고 짧은 시간 내에 또 해서 그런 듯해요. 또 제가 실제로 두 아들의 아빠고 성별이 남자니까 모성애를 할 수는 없잖아요(웃음). 근데 제가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캐릭터라 부각돼 보이는 거지 모든 사람에게 그런 감정은 내재돼있어요. 누구나 그런 상황이 오면 느낄 수 있죠. 지난해만 해도 그렇잖아요. 자식이 있든 그렇지 않든 (세월호 참사로)우리가 얼마나 아팠습니까.”
영화 ‘아는 여자’(2004) 속 단역으로 스크린에 진출한지 어느덧 11년, 류승룡은 이제 충무로의 대표 흥행보증 수표가 됐다. 게다가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1232만)를 시작으로 ‘7번방의 선물’(1281만), ‘명량’(1761만)까지 3년 연속 1000만 영화를 만들어냈다. 한번 달기도 힘든 1000만 타이틀을 그는 무려 세 번이나 거머쥔 거다. 그렇기에 흥행에 관해서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솔직한 말로 ‘손님’은 호불호를 많이 탈 수 있는 작품. 흥행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작품이 잘될 거 같으면 출연하고, 안 될 거 같으면 안하고 그러진 않아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그냥 재밌겠다 싶으면 해야죠. 좋은 기회이고 좋은 작품이 들어왔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잖아요. 흥행 수치, 관객수는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아요. 3년 연속 1000만 했으니까 이번에도 해야 해’ 그렇게 계속 신경 쓰면 스트레스 받아서 어디 살겠습니까. 이렇게 늪에 빠지는 건 아닌 거죠. 스스로 얽매이게 될 뿐이죠.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인 걸요.”
흥행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는 그의 표정은 정말이지 너무나 담담했다. 물론 류승룡은 인터뷰 내내 (간혹 농을 건네며 장난을 쳤을 때를 제외하면)시종일관 같은 표정이었다. 최근 이런저런 구설에 올라서일까. 그는 연기 외에 다른 일에는 좀처럼 크게 반응하지도 특별히 의미를 두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뜨겁게 좋아하다가 뜨겁게 슬퍼하고 쉽게 분노하는 것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죠.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느낀 거예요. 작품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배운 거죠. 특히 배우들은 사사롭고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 때문에 분노하면 연기로 나타내야 할 감정까지 소멸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연기할 때는 최대한 자아를 누르고 평소에는 그저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하루하루 살아내고 싶은 마음입니다(웃음).”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