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현금보유량 332조원…높은 부채·낮은 금리에 묶여
[뉴스핌=배효진 기자] 일본 국민들의 현금앓이에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일본 경제가 호흡곤란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경기가 회복되려면 가계가 보유한 막대한 현금이 시장에 풀려야 한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의 232.5%에 이르는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와 0.10%로 사상 최저치로 떨어진 기준금리에 가계는 지갑을 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다.
가계가 보유한 현금을 시장으로 풀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정부가 더 이상 부채를 감당할 여력이 없어 일본 경제에 더 이상 남은 선택지가 없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CNBC는 야스노리 우에노 미즈호증권 수석 시장전략가의 보고서를 인용해 지난달 25일 기준 일본 가계의 현금보유량이 대략 36조엔(약 332조원)에 이른다고 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일본은행(BOJ)이 실시 중인 연간 80조엔 규모의 자산매입프로그램의 4배에 육박하는 돈이 가계에 묶여 있는 셈이다.
최근 아소 다로(麻生 太郎) 재무상도 일본 가계에 잠들어 있는 돈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한 바 있다.
아소 재무상은 일본 가계의 높은 현금 보유율에 대해 "말도 안되는 일"이라며 "현금을 금융기관에 맡겨 은행들이 유망한 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일본에서 '현금이 왕'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진 것은 경기침체에도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해소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즈호은행이 제시한 10년만기 예금 금리는 0.1~0.15%에 불과하다. 1만달러(약 1103만원)를 예금해서 얻는 연간 이자 수익이 1달러(약 1103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경제에 상당한 충격을 주는 위기가 닥치면 가계의 현금모으기가 중단될 수 있다고 말한다.
히데오 쿠마노 다이이치생명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엔화가 달러화 대비 매년 20엔씩 약해져 달러-엔 환율이 200엔까지 오르면 사람들은 엔화 보유를 두려워할 것"이라며 "은행을 통해 돈을 해외로 보내는 등 심각한 자본 유출이 발생할 우려가 높다"고 분석했다.
물론 가계가 보유한 현금을 시장으로 끌어들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0.10%로 사상 최저치로 떨어진 일본의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이다.
다만 기준금리 인상이 정부의 부채 부담을 눈덩이처럼 불린다는 점에서 악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쿠마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현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면 정부는 더 이상 부채를 감당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조사 결과, 올해 일본의 GDP 대비 부채비율은 232.5%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현재 국가 부채 문제로 유로존 탈퇴 우려를 낳고 있는 그리스의 부채비율도 188%로 일본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뉴스핌 Newspim] 배효진 기자 (termanter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