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은 무대 전체를 차지하는 한옥을 배경으로 한다. 노부부 장오(신구)-이순(선숙)의 느리지만 따뜻한 일상, 홀로 남은 장오가 손주의 빚을 갚기 위해 한옥을 팔고 요양원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모습이 교차돼 그려진다.
뚜렷한 기승전결이나 갈등, 클라이맥스는 찾아볼 수 없다. 시간의 흐름도 중요하지 않다. 이숙의 등장이 장오의 환상이 만든 가공의 사건인지 혹은, 과거 이숙이 살아있을 당시로 시간을 건너 뛴 것인지는 극을 감상하는데 중요하지 않다.
등장인물들 사이로 오가는 여상한 대화 속, 구태여 읊지 않아도 절절히 와닿는 서사가 있다. 한국전쟁의 비극, 이념 대립이 남긴 상처, 구제역으로 인한 동물살육, 이 시대 만연한 물질지상주의까지.여백과 침묵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형이상학이 오롯이 담겼다.
집이 헐리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시끌벅적한 청각적 이미지에는 이 같은 변화마저도 끌어안는 손진책 연출과 배삼식 작가의 세상을 향한 애정의 눈길이 엿보인다. 집이 헐리고 어딘가에서 새롭게 쓰여질 조각의 뒷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국립극단이 2015 봄마당 첫 작품으로 올린 연극 ‘3월의 눈’은 오는 29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2만~5만 원.
[뉴스핌 Newspim] 글 장윤원 기자(yunwon@newspim.com)·사진 국립극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