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강조로 도전의식 높이고, 성과 보상 통해 로열티 강화
[뉴스핌=이강혁 기자] "단순한 위기감이나 경각심 보다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조치라고 봐야겠죠. 내부적으로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결정한 사안 아니겠습니까."
삼성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재계 인사는 이번 삼성의 임금동결 조치에 대해 이같은 견해를 밝혔다. 일종의 경영전략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뭘까.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 주요 계열사들이 직원들의 임금을 동결키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재계의 해석이 분분하다. 국내 경제와 재계를 대표하는 수성의 그룹이다보니 그 움직임이 주는 파장이 만만치 않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직원들의 임금을 동결해야 할만큼 경제상황이 녹록치 않다며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그동안 삼성이 큰 흐름의 시장 상황을 빠르게 읽고 선제적인 조치를 해왔다는 점에서도 타 그룹들의 긴축경영 물결을 예상하기도 한다.
이미 협력사 사이에서는 납품단가에 대한 압박이 있을 것이란 위기감도 엿보인다. 대기업들이 마른수건 쥐어짜기로 비용절감에 나서게 되면 한동안 잠잠했던 납품단가 인하 요구가 재현될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삼성의 한 협력사 관계자는 뉴스핌과의 전화통화에서 "동결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매년 납품단가를 5%씩 깎는 것이 관행이었지만 상생법 실시 이후로 그런 말이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조치로 봤을 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같은 대외적인 파장을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이번 조치가 대외적인 영향을 고려한 것이라기 보다는 내부적인 영향에 초점을 맞춘 전략적 선택이 아니냐는 것이다.
예컨대, 삼성이 지난해 실적 하강 흐름을 보이면서 어려움을 겪은 만큼 이번 임금동결 조치가 내실경영 차원의 위기감을 반영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업 경영이라는 것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때문에 이런 임금동결 카드는 비용절감보다는 위기 강조를 통해 조직 전체를 다시 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 위기 강조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오랜 리더십 표현 중 하나다. 회사가 잘 나갈때나 그렇지 못할 때나 관계없이 수시로 위기론을 꺼내들면서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을 연이어 갈아치우는 과정에서도 이 회장의 위기론 설파는 계속된 바 있다.
이번 임금동결 조치는 이런 맥락에서 의미하는 바가 분명하다. 실제 이번 임금동결 조치의 내용을 뜯어보면 당장 회사의 비용절감 효과나 직원들에게 미칠 여파가 크지 않아 보인다. 국내 사업장 9만여명의 직원에게만 해당하는 조치인데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 계열사의 임금동결은 기준인상률만 동결키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인상률이 1.9%였다는 점에서 올해 임금동결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개인 성과에 따른 성과인상률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분명하다. 삼성의 인사철학으로 정착된 성과주의 신상필벌을 더욱 강화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기준인상률이 동결되고 개인 성과에 따른 인상률이 유지되면 똑같은 직급의 직원이라고 하더라도 인사고과에 따라 실질 연봉은 차이가 나게 된다. 직원들은 고과에 따라 0~7%의 성과인상률을 적용받는다. 지난해 100원을 받은 직원들이 올해도 100원을 받으리라는 보장은 없어진 것이다.
결국 어려운 경영현실을 들어 임금동결을 전격적으로 결정하면서 내부적인 위기감은 극대화하고 조직원에게는 성과로 동기를 부여해 도전의식을 높이려는 카드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높인다. 회사의 위기가 직원들에게도 남 일이 아닌 현실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더 정신차리고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시사점을 강하게 던진 셈이다.
이런 분위기는 장기적으로 직원들의 로열티(충성) 경쟁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의 한 사립대학 경영학부 교수는 "동기유발을 위한 외제적 보상(급여, 인센티브 등)은 오히려 창의적인 생각을 어렵게 만드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된다"며 "임금동결이라는 위기감은 오히려 조직을 결속시키고 개개인의 장기적인 개발욕구를 불러오며 이는 결과적으로 조직에 대한 로열티를 높이는 효과로 이어진다"고 진단했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