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윤원 기자] 무대 경력 20년 차. 이제 무대가 집보다 편하다.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속 매력남 레트 버틀러를 연기하는 배우 김법래의 이야기다.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동명 원작 소설(1936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프랑스 뮤지컬로, 1939년에는 동명 영화로 만들어져 세계적 인기를 끌었다. 미국 남북전쟁 전후의 남부를 무대로, 스칼렛 오하라라는 여성이 겪은 인생의 발자취를 따라 전개된다.
지난 9일 국내 첫 개막한 이후, 평가는 가지각색이었다. 그 속에서 김법래는 중심을 잃지 않았다. 원작 영화는 거의 4시간에 달하는 분량인 데다 무척이나 서사적인 작품. 한 여자의 ‘일생’을 두 시간 반으로 표현한 만큼 생략을 안 할 수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히려 이토록 압축해 표현했다는 점에서 김법래는 이 뮤지컬을 “참 대단한 작품”으로 손꼽았다. 김법래는 “지금껏 20년 간 뮤지컬을 하면서 만나온 작품 중에서도 훌륭하다”고 말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어쨌거나 스칼렛입니다. 극 후반부, 레트와 엇갈림에 있어 많은 부분이 생략됐지만, 그 이야기들을 하기 위해 초반부를 잘라내면 스칼렛의 인생을 이야기할 수 없죠. 만약 서사적인 면을 부각하려 했다면 술집 신은 뺐겠지만, 뮤지컬이기 때문에 이런 쇼적인 장면도 필요하고요. ‘바람사’의 안무와 노래가 따로 나오는 것은 그냥 프랑스 뮤지컬의 특징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십계’나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그런 것처럼요. 많은 말들이 있지만 전 그냥 ‘이런 작품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저는 원작 영화 속 클라크 게이블처럼 보이려고 했어요. 고전적으로 못된 사람이라고 할까? 요즘 말하는 나쁜 남자가 아니라 그냥 영화 속 클라크 게이블 같은 사람이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웃음). 제가 생각한 레트 버틀러는 명예를 지키려는 사람이에요. 직업이나 어떤 행동들을 봐선 그렇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명예가 있는 사람이라고 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감하게 전쟁터로 떠난 것 같고. 동시에 한 여자만을 향하는 사랑을 갖고 있어요. 그 사랑은, ‘널 사랑하니까 네가 날 사랑할 때까지 기다릴게’가 아니라 ‘네 마음은 상관 없어. 내가 널 사랑하니까 네게 돌아가겠어’와 같은 사랑인 것 같고요. 제가 연기하는 레트는 신사적인 것과는 완전히 다른 듯해요.”
동명 원작 영화에서는 배우 비비안 리와 클라크 게이블이 각각 스칼렛과 레트로 분해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이번 한국 초연에서는 레트 역으로 김법래를 비롯해 임태경, 주진모가 트리플 캐스팅돼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신사적인 부드러움은 (임)태경이가 연기하는 레트에서 엿보이는 것 같아요. (주)진모는 나쁜 남자는 나쁜 남자인데 좀 개구진 느낌이 묻어나고요. 셋 다 개성이 뚜렷하고 다르죠. 아무튼 전 이 인물을 연기하면서 정말 재미있어요.”
김법래는 작품 속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장면에서 상큼(?)한 댄스 실력을 선보이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근래 들어 볼 수 없었던 그의 색다른 모습에 객석이 술렁인다. 김법래는 “더 춤 추고 싶다”는 말로 해당 장면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레트 버틀러라는 캐릭터와 안 맞지만, 사실 재미있으려고 넣은 신이잖아요. 마을사람들은 물론 스칼렛의 유모마저도 스칼렛을 험담하는 장면이거든요. 코믹하게 그려져야 할 것 같았죠. 레트라는 무거운 인물이 춤을 춘다는 게, 약간은 ‘반전’이란 느낌이 있어서 더 재미를 줄 수 있는 지점인 것 같아요. 요즘 춤 안 춰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더 추고 싶었어요(웃음)”
김법래는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 역으로 더블캐스팅 된 바다, 서현(소녀시대)과 호흡을 맞춘다. 특히, 실제 20세 이상 나이 차이로 궁금증을 모았던 서현과 호흡은 의외의 케미를 발산하며 극의 재미를 높이고 있다.
“예전에 써니와도 같이 뮤지컬을 한 적 있는데, 써니는 타고난 끼가 워낙 많아서 잘해요. 서현이는 처음엔 못했어요. ‘바람사’를 하면서 많은 배우가 (서현에게)도움을 준 게 사실이에요. 워낙 어리고 경험도 적다 보니 대사를 일일이 짚어주고 연습 시켰죠. 그런데 중요한 건, 정말 빨리 흡수한다는 거예요. 스케줄이 바빠서 이 나라 저 나라 왔다 갔다 하면서도, 가르쳐 줬던 걸 다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연습하고 노력한 게 딱 드러나는구나 싶었어요.”
[사진=김학선 기자] |
“예전에 ‘클레오파트라’(2008년)에서 시저 역을 맡았는데, 1막이 끝나면서 시저가 죽거든요. 그 때 정말 매번 잠들었어요.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와서 막 깨우고(웃음). 그만큼 무대가 편해요. 일이 없을 땐 집에만 있는 ‘집돌이’인데도, 연습실과 무대에 있는 시간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많거든요. 이제 무대가 집보다 편합니다.”
묵직한 저음의 보이스를 무기로 탄탄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김법래는 앞서 일본에서 뮤지컬 ‘잭더리퍼’와 ‘삼총사’를 연달아 선보이며 성공적인 일본 진출을 알렸다. 현지 인기에 힘입어 오는 3월8일에는 자신의 네 번째 일본 콘서트를 개최한다. 뮤지컬계의 알아 주는 한류 스타. 하지만 방송과 영화계에서는 ‘신인’이라는 타이틀로 이제 한 걸음을 뗀 상황이다. 대우와 환경이 모두 다르고 쉽지만은 않지만, 그의 지치지 않는 활동은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방송이나 영화를 하면서 느낀 건 뮤지컬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너무 모른다는 것, 그리고 완전히 (뮤지컬과는)다른 세계라는 점이었어요. 대우도 참 많이 다르고요. 하지만 지금의 소속사에 들어가면서 재작년 ‘투윅스’를 시작으로 이제 막 출발했습니다. 시청자들, 관계자에 얼굴을 알려야 하는 시점이고요. ‘신인’으로서 참고 노력하면서 하나 둘 시작하고 싶어요.”
[뉴스핌 Newspim] 글 장윤원 기자 (yunwon@newspim.com)·사진 쇼미디어 그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