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배우 하정우(37)가 또 한 번 메가폰을 잡았다. 카메라 뒤에만 있던 전과 달리 이번에는 카메라 안팎을 넘나들며 촬영장을 누볐다. 연출과 동시에 주연 배우 자리도 꿰찬 거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쉽게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그는 두 가지 롤 모두 다 무사히, 그리고 멋지게 해냈다. 동료 배우들의 칭찬을 한몸에 받으면서.
하정우가 두 번째 연출작 ‘허삼관’(제공·배급 NEW, 제작 ㈜두타연, 공동제작 ㈜판타지오픽쳐스)을 선보였다. 지난 14일 개봉한 영화는 중국이 낳은 세계적 작가 위화(余华)의 대표 소설 ‘허삼관매혈기’를 한국적 정서로 새롭게 재해석, 한국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가족을 위해 피를 파는 허삼관의 삶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선 기분은 좋아요. 개봉하니까 상당히 심장이 쫄깃하네요. 배우로서 개봉을 기다리는 것보다 거의 백 배쯤 더 떨리기도 하고요. 처음은 아니지만, ‘롤러코스터’와는 또 다른 상황이니까요. 단순히 예산 문제를 떠나 상업 영화의 평가를 받는 거라 더 그렇죠. 전작은 작가주의 영화인 데다가 저예산 영화라 변명의 여지가 있었잖아요(웃음). 제작비부터 참여 스태프까지 거의 14배 정도 차이가 나요. 그러다 보니 책임감도 부담감도 더 커진 게 사실이죠.”
‘허삼관’은 감독 하정우가 전작 ‘롤러코스터’를 선보인 지 일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두 작품의 색깔은 제법 다르다. 아무래도 이번 영화는 상업적인 성향을 띄다 보니 전체적으로 보편적인 스토리와 감정이 주를 이룬다. 감독 역시 연출 당시 여기에 주안점을 뒀다. 물론 하정우 특유의 말장난이 이번에도 제 몫을 한다는 평도 있었지만, 이 역시 위화의 원작 소설을 살렸을 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캐릭터, 소소한 드라마 갈등, 그리고 그 모든 걸 극복하고 성장하는 아버지가 되는 허삼관에게 집중했죠. 보편적인 드라마가 영화에서는 잔잔하고 소소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거래 생각했어요. 보편성이 가진 힘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카메라 샷부터 음악, 미술 모두 클래식하게 담아냈죠. 자극적이지 않고 올가닉한 영화, 그 안에서 우리가 느끼지 못했던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 떠올리게 하고 싶었어요. 동시에 위화 소설의 맛인 문체를 꼭 살리고 싶었죠.”
감독으로서 살리려고 노력한 보편적인 이야기는 하정우가 직접 허삼관 옷을 입으면서 특별하게, 그리고 입체감 있게 살아났다. 언제나처럼 그의 연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촬영장에서는 배우로서 연기에만 집중하고 싶었던 그는 프리 프로덕션(영화 촬영 전 프로덕션을 위한 모든 준비를 하는 단계)도 남들보다 더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결국 ‘허삼관’은 한 남자의 성장 스토리이자 아버지의 이야기인 셈이죠.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아버지가 돼가는 과정, 그리고 부성애를 그린 거예요. 허삼관 캐릭터를 그려낼 때도 그런 점을 기억했죠. 동시에 저희 아버지(김용건)의 모습을 많이 담아냈고요. 배우, 감독을 떠나 아이들 보면서 결혼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 작품이기도 하고요. 이런 얘들이 집에 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런 걸 보니까 뒤늦게 결혼할 때가 온 건가 싶었죠(웃음).”
배우와 감독, 이 두 가지만으로도 벅찰 만한데 하정우는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화가로도 활동 중이다. 물론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그의 최종 목표는 ‘연기’다. 더 포괄적으로 말하면 우디 앨런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영화인이 되고 싶다. 내친김에 “지금 활동하는 배우들과 함께 나이 들어서 영화 찍는 실버타운을 만들어야겠다”며 다소 재밌는 목표도 추가했다. 영화인 하정우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꿈과 희망, 그리고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 하는 일의 모든 시작은 결국, 어떻게 하면 좋은 배우가 될까예요. 연기가 중점이란 말이죠. ‘롤러코스터’를 처음 한 것도 배우로서 매너리즘을 벗어나기 위해서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어떻게 하면 이 지루하고 막막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시작한 거예요. 배우로서 건강하게 롱런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된 일죠. 그래서 목표도 하나,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배우, 더 좋은 영화인이 될 수 있을까예요. 확실한 건 이 모든 과정에서 오는 고통을 버틸 만큼 그 이상의 재미가 있다는 거고요.”
물론 단기간 목표, 2015년 새해 목표도 있다. 다소 거창한 최종목표와 달리 가볍고 유쾌하다. 신나게 놀자는 것. 현재 ‘허삼관’ 홍보 활동과 최동훈 감독의 신작 ‘암살’ 촬영을 병행 중인 그는 2월이 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차기작으로 확정 지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촬영 전까지 여유 시간이 생긴 덕이다. 방학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그의 표정이 장난스레 변했다.
“놀 때 재밌게 신나게 놀고 싶어요. 우선 1월 말 즈음이면 ‘암살’ 촬영이 마무리될 듯해요. 그러고 5월부터 ‘아가씨 촬영이 들어가거든요. 한 3개월 정도 시간이 있는데 그때 가장 재밌게 노는 거, 그게 올해 저의 가장 큰 목표죠(웃음). 기다리고 기다렸던 첫 휴식이거든요. 거의 데뷔 이래 처음이죠. 2004년 대학교 졸업해서 바로 드라마 시작하면서 쉼 없이 달려왔죠. 하와이 가서 서핑이나 배워볼까 봐요. 그렇게 다시 충전하고 또 열심히 나아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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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