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산조정국 부상? 셰일가스 위기?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불발은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가격 결정력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번 오스트리아 빈 석유장관회의 결과를 계기로 국제 유가 산정부터 원유 공급까지 OPEC의 통제에서 벗어나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새 질서가 도래할 것이라는 얘기다.
일부 시장 전문가는 원유 수급과 가격 안정을 통제하는 이른바 생산조정국 지위가 OPEC에서 미국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 유가, 시장 원리로 결정?원유 생산 현장[출처:AP/뉴시스]
28일(현지시각) 국제 유가와 함께 관련 종목이 동반 폭락한 가운데 시장 전문가들은 앞으로 수년간에 걸쳐 원유 시장의 판도 변화가 펼쳐질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소시에떼 제네랄의 마이크 위트너 원유 리서치 헤드는 “국제 유가 결정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며 “유가가 더 이상 사우디 아라비아나 OPEC의 영향력 하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원리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OPEC 회의 결과는 중장기간에 걸쳐 거대한 파장을 몰고 올 것”이라며 “OPEC은 스스로 시장 지배력을 내려놓은 셈”이라고 주장했다.
BNP 파리바의 해리 칠린궈리안 상품 시장 헤드 역시 “OPEC이 이번 회의에서 내린 결정은 생산조정국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나 다름 없다”며 “의도와 무관하게 유가 결정권을 시장에 넘긴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70달러 선을 테스트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OPEC 무리수, 미국에 得 VS 失
시장 전문가들은 OPEC이 생산하는 원유의 수요가 2017년까지 매년 감소할 것으로 보이는 한편 미국의 공급이 대폭 확대, 국제 원유 시장에서 OPEC의 영향력이 25년레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원유 생산은 하루 907만배럴로 30년래 최고치에 달했다. 내년 생산 규모는 하루 940만배럴로, 1972년 이후 최고치에 이를 전망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새로운 원유 생산조정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바클레이스의 미스윈 마허쉬 상품 애널리스트는 “OPEC이 감산을 단행하지 않기로 한 것은 미국에 패권을 넘기겠다는 움직임과 다름 없다”며 “이번 회의 결과는 미국이 새로운 생산조정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셈”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OPEC이 미국의 셰일가스 업계를 강타하려는 움직임이라는 일반적인 견해와 상반되는 것이다.
샌포드 번스타인 앤 코에 따르면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라크, 이란 등 중동의 산유국의 경우 손익분기점이 배럴당 30달러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80달러를 웃도는 실정이다.
러시아의 2위 석유 업체인 루크오일의 레오니드 페둔 부사장은 “유가 하락을 부추기는 OPEC의 정책이 미국 셰일가스 업계를 파괴시킬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 이머징마켓에도 판도변화
이머징마켓에서도 국제 유가를 둘러싸고 새 판이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인해 국가별 명암이 뚜렷하게 엇갈릴 것이라는 얘기다.
또 일반적으로 유가 하락이 경제 성장률에 긍정적인 데 반해 인플레이션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이 같은 원리 역시 흔들릴 것이라고 시장 전문가는 내다보고 있다.
당장 러시아의 루블화가 급락, 침체 리스크가 크게 고조된 가운데 중장기적으로 원유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와 유가 하락으로 반사이익을 얻는 국가 사이에 차별화가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를 감안, 투자은행(IB)들이 새로운 포트폴리오 전략을 제시하고 나섰다. 아베르딘 애셋 매니지먼트는 나이지리아의 비중 축소를 권고한 한편 터키 리라화의 투자 비중을 확대할 것을 주장했다.
피셔 프란시스 트리 앤 와츠의 다니엘 우드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국제 유가의 하향 안정과 반등까지 걸리는 시간에 따라 이머징마켓의 자산 가격 추이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며 “인도와 터키가 승자로 분류되는 반면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의 경우 패자가 될 여지가 높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기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