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박찬욱 감독을 존경하는, 정사보다는 정서를 강조하는 정우(윤계상)의 직업은 경력 10년 차 베테랑 에로영화감독. 그는 19금계의 돌직구 조감독 진환(오정세), 할리우드를 능가하는 19금 CG계의 감성변태 준수(조달환), 입사 후 음란마귀의 본색을 드러낸 엘리트 출신 대윤(황찬성)으로 이뤄진 어벤져스 군단을 이끌고 있다.
이런 정우의 꿈은 극장에 걸릴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 그의 곁에는 신음으로 가득한 에로 영화들뿐. 그래도 언젠간 부모님께 자신의 영화를 보여주겠다는 목표를 안고 절대 좌절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밖에 몰랐던 정우 앞에 대한민국 톱 여배우 정은수(고준희)가 등장한다. 여자라면 더 궁금할 것도 없었던 그인데 어째 자꾸 호기심이 생긴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에로맨틱 코미디’라는 수식어를 자처했다. 말 그대로 에로+로맨틱+코미디의 합성 장르라는 것. 하지만 막상 베일을 벗은 ‘레드카펫’은 에로맨틱 코미디라기보다는 청춘을 위로하는 휴먼 드라마이자 꿈을 위해 무던히 나아가는 한 삼십대 감독의 자전적 영화였다.
실제 메가폰을 잡은 박범수 감독은 과거 10년 동안 270여 편의 성인 영화를 찍은 에로영화 감독이다. 이번 작품을 통해 첫 상업 영화 데뷔를 앞둔 그는 앞서 기자간담회에서 소감을 말하던 중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작품에 애정을 담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녹여서인지 영화 속 에피소드는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감정선은 제법 섬세하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서는 진정성과 따뜻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박 감독이기에 만들어낼 수 있는 장점들을 잘 살려낸 셈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신선하다. 박 감독의 모습이 투영된 정우를 연기한 윤계상은 꿈과 현실 속에서 혼란을 겪는 감독의 내면을 잘 표현해냈다. 도도하고 시크한 이미지의 고준희는 그간 본적 없는 러블리한 매력을 마음껏 뽐냈다. 이번 작품으로 첫 스크린 데뷔를 치른 2PM 황찬성 역시 무대 위 카리스마는 잠시 접어두고 어리바리 매력을 발산, 여심을 흔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최고의 열연을 펼친 배우를 꼽자면, 단연 오정세다. 그는 능글능글한 연기는 물론, 돌직구 스타일로 내뿜는 19금 말장난으로 시종일관 객석을 웃긴다. 간혹 (주인공들에 의해서) 작위적 상황이나 대사가 등장할 세라면, 직접적인 언어로 이를 꼬집으며 극의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어디까지가 대사이고 어디까지가 애드리브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오정세와 박 감독의 재치가 만들어낸 시너지는 영화의 최고 강점이 아닐까 한다.
극 초반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어릴 적 꿈이 4대 보험이었느냐?” 웃자고 던진 이야기지만, 중간중간 등장하는 이런 가벼운 대사들은 되레 관객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꿈꿔온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인생, 하지만 목표가 있기에 그럼에도 나아가는, 꿈을 향한 과정이기에 부끄러움보다는 프로정신을 갖는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청춘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2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사진=㈜프레인글로벌 제공]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