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를 대표하는 문예사조의 하나인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예술, 디자인, 음악에 이르는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미니멀리즘은 생각은 복잡하게 해도 표현은 단순하게하며, ‘최소한의 표현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는 것이 그 특징이다.
“Less is more(덜한 것이 더한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는 형태구성(Component)의 미니멀 기법을 통해 단순성과 명확성으로 상징되는 20세기 건축을 선도했다. 자연계의 리아스식 해안선, 나뭇가지 모양, 눈꽃 등 단순한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복잡하고 묘한 자기 유사성의 전체를 만드는 프랙탈 구조도 복잡계의 단순 자기복제 알고리즘이다.
스티브잡스의 단순화 철학에 영향을 준 파블로 피카소는 11장의 석판화 연작 ‘황소’를 단계적으로 세부묘사를 생략하여 마지막에는 극단적으로 본질만 남긴 선으로 황소를 표현했다. 애플의 브랜드,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방법, 마케팅 등 모든 업무의 기저에는 이러한 단순화 철학이 깔려 있다.
사물을 간결화해 나간 피카소의 연작판화 '황소' |
오늘날 기업들은 자기 제품을 고객들에게 혁신적으로 보이려는 목적으로 특이하고 기발한 장치나 장식품 등을 통해 과장되게 차별화하려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상품의 다양화와 고기능화에 집착하는 기업의 행태가 고객의 피로감, 불쾌감, 무관심 등 소비 스트레스를 증폭 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악마는 디테일한 것들에 숨어 있다는 말이 있듯이 복잡한 부품과 과도한 기능, 과장된 디자인 등이 오히려 제품 전체의 가치를 저하시킬 수 있다. 최고급 스마트폰의 기능 중 70%는 고객이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기업은 소수고객의 호기심 충족과 제품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다양성과 복잡성에 주목하게 된다. 이는 제품의 독창성과 복잡성을 심리적으로 즐기는 혁신소비자(Innovator)들에게만 특정된
기능 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객들이 핵심기준으로 따지는 것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제대로 충족시켜 줄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항공사다. 이 항공사의 성공요인으로는 갖은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저가 항공으로 단순화한 마케팅 전략과 항공사라는 업(業)의 본질적 서비스에 충실한 기업문화를 꼽을 수 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성공요인 |
미국의 태양의 서커스는 서커스산업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를 돌며 공연업계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태양의 서커스는 어떻게 새로운 형식의 세련된 서커스를 선보일 수 있었을까. 이는 서커스의 전형으로 여겼던 스타곡예사와 동물묘기를 과감히 포기하고 예술성을 높이는 버림의 전략을 선택한 결과다. 이처럼 무엇을 하지 않을 지를 결정하는 것이 무엇을 할지를 결정하는 것만큼 중요한 전략적 선택이 되기도 한다.
기업은 고객이 제품을 선택할 때 “More is safety(많을수록 안전하다)”라는 생각에서 더 많은 기능을 가진 상품을 제안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Less is better(적을수록 좋다)”라는 고객의 보편적 생각이 존재한다. 고객이 기대하는 수준 이상의 제품 요소를 제거하는 과유불급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 이유다.
일찍이 노자는 도덕경에서 “덜고 또 덜어내면, 무위지경에 이른다(損之又損, 以至於無爲)”라고 했다. 고객에게 전달할 간명한 메시지만 남을 때까지 반복해서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해 나간다는 스티브 잡스의 ‘버림의 미학’이나, 지난달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난한 교회를 주창하며 본질에 충실한 성직자의 모습은 모두 단순함과 Back to the basic이라는 명제에 수렴한다. 인류의 문명도 6천개가 넘는 설형문자와 상형문자의 복잡한 체계가 20내지 30개의 글자로 간결화 되면서 가속화되기 시작했고 , 디지털 문명은 십진법 대신 2개의 숫자만 사용하는 이진법의 간결성 덕분에 탄생했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떻게 마케팅의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을까. 기업은 브랜드 편익을 위한 복잡성, 고기능화, 제품 다각화에 편향된 공급경쟁력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소간의 변화만을 가미하는 제품라인확장도 기존제품들의 시장만을 잠식(Cannibalization)할 뿐 이다. 이제 기업은 제품의 본질적인 카테고리 편익을 제공하는 부문에서 최고를 지향해야 한다. 또한 하나의 제품이 다양한 기능 제공과 용도로 사용되는 One source multi use의 개념에서 단순화의 확장 해법을 찾아야 한다. 오늘날 같은 수요포화 시대에서는 유행(Fad)보다는 트렌드 중심의 수요창출력이 단순화의 성공 포인트를 낳는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환경분석(SWOT)과 내부자원의 효과적 배분(BCG Matrix)을 통한 니치버스터(틈새시장의 히트상품) 시장에의 진출도 단순화 전략의 일환이다.
마케팅 전략의 핵심은 초점을 좁히는데 있다. 마케팅의 성공적인 차별화는 기본에 충실하며 고객의 기대치를 꾸준히 충족시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제품들이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장수 브랜드들의 공통점은 변화 한 듯 보이지만, 결코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수 고객의 핵심적 니즈에 집중한 제품의 기능에서 고객이 차별화된 혜택을 느끼도록 하는 ‘단순함의 미학’이 스테디셀러 상품의 모티브다. 이제 제품의 본질적 기능에 집중하는 미니멀리즘 전략은 고객과 기업 간의 제품 정보에 대한 비대칭을 완화시키는 기회이며, 기업이 마케팅 전략에 있어 규모와 범위의 경제를 실현하는 뉴노멀이다. (국민은행 이치한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