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미완의 과제, 후세대에게 숙제로 남기다
- 적당주의와 검은 뒷거래의 관행, 사고공화국의 오명 2
1970년대 와우아파트 붕괴, 대연각호텔 화재, 1980년대 KAL기 격추사건, 1990년대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2011년 우면산 산사태 등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이를 두고 혹자는 한국을 ‘사고공화국’이라고 비아냥댔다. 대부분의 사고는 부실시공과 감독상의 무책임, 관리 소홀과 안전 불감증 등 복합적 요인에서 비롯되었다.
이들 사고 현장은 끔찍하다 못해 생지옥이었다. 많은 인명들이 시멘트와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서서히 죽어갔다. 더러는 상반신이 아예 없어지거나 부패해 형체조차 알 수 없는 주검도 있었다. 물에 빠져 죽기도 하고 뜨거운 불에 타 죽기도 했다. 이 억울하게 죽은 수많은 주검 앞에 우리는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의 영전에 어떻게 속죄할 수 있을 것인가?
요행히 살아남은 사람일지라도 한평생 마음의 상처가 남게 된다. 바로 곁에서 죽어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한평생 눈에 생생하고, 가슴속에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특히나 죽어가던 이가 다름 아닌 친구나 가족일 경우 그 정도는 더욱 심각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사고가 터질 때마다 그들에게는 당시의 악몽이 떠오르고 가시처럼 파고들어 가슴에 꽂힐 것이다.
세상은 망각을 통해 아픔을 흘려보낸다. 그러나 가족을 가슴에 묻은 유족들의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고통을 그 누가 감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들 대부분은 세상이 싫고 원망스러워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또 어떤 이들은 스스로를 탓하고 배우자를 책망하다 결국 이혼 또는 별거를 하기도 했다. 심지어 개중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도 없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내 나라가 내 나라 같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조국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조국을 뒤로 한 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이 나라를 떠나갔다. 더러는 조국이 싫어서, 더러는 아픈 상처를 조금이라도 잊고 싶어서...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엄청난 대형 참사가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그때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을 것처럼 분위기를 잡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 다 잊어버리고 또 다시 적당주의가 판쳐 새로운 사고가 생기는 그런 악순환이 이어져 왔다. 솔직히 우리는 알게 모르게 빨리빨리와 적당주의 문화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또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으로 웬만한 비리에는 적당히 눈을 감아주고 살아가려는 검은 뒷거래 관행에도 익숙해져있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기본을 소홀히 하고 절차를 무시하면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좀 더긴 안목에서 가정과 기업, 그리고 국가를 잘 운영해 나가지를 못한다. 그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득 챙기는데 급급할 따름이다. 특히 검은 뒷거래는 우리 경제사회의 총체적부실을 초래하고 경쟁력을 훼손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의 양심과 존엄성마저 갉아먹는 무서운 바이러스인 것이다. 이를 퇴치하지 못할 경우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따라서 우리는 한시바삐 적당주의와 검은 뒷거래를 불식할 수 있도록 빠진 너트들을 찾아 다시 조이는 사회시스템 정비작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적당주의와 빨리빨리 문화에 ‘철저하고 빈틈없는 부지런함’, ‘섬세함과 침착함을 지닌 여유로움’을 더해나가야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고, 부정부패 없는 맑고 투명한 사회분위기를 조성· 정착시키는 데 힘을 모아야한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경제사회는 영원한 구두선에 불과할 것이다.
*저자 이철환 프로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초빙위원
-현 단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재직)
*저서- 과천청사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한국경제의 선택, 14일간의 경제여행, 14일간의 (글로벌)금융여행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