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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가버린 시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다
-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2
계절의 여왕 5월. 이 계절이 되면 대학가는 축제분위기로 달아오른다. 5월의 공기는 따사롭게 느껴진다. 라일락꽃 향기가 캠퍼스에 가득하다. 브람스의 ‘대학축전 서곡’ 선율이 감미롭게 흐른다. 여기저기 간이 카페가 들어서있다. 문학의 밤 포스터와 음대생과 미대생들의 공연 전시 프로그램 벽보가 붙어 있는 모습도 눈에 띤다.
축제의 마지막 날 밤에는 피날레로 쌍쌍파티가 열린다. 파트너끼리 게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손을 살며시 잡아본다. 어색했지만 플로어에 같이 나가 춤도 추어 보았다. 점차 분위기는 고조되어 갔다. 파티가 끝난 뒤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모두 파트너끼리 짝을 지어 뿔뿔이 흩어진다. 우리 둘은 말없이 캠퍼스 뒷동산을 거닐었다. 아름다운 별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애의 눈동자가 유난히 청초하고 맑게 빛나 보였다. 주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설레어왔다. 이 순간이다. 그 애에게 첫 입맞춤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나는 못난이!
우리는 비가 좋아 빗속을 거닐었고 눈이 좋아 눈길을 걸어 보았다. 사람 없는 찻집에 마주 앉아 밤늦도록 낙서도 했었다. 그렇게 우리는 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다. 아카시아 꽃향기 그윽한 봄밤, 저 멀리서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 들려오는 여름밤, 귀뚜라미 구슬피 울어대는 가을밤, 그리고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밤이 지나갔다.
그러나 이후 우리 둘 사이의 연락이 뚝 끊겼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나의 적극성과 숫기 부족 때문이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 애에게로 편지를 띄워 보냈다. 아직 나는 이전 그대로라는 사연을 담아서... 며칠이 지난 후 그 애가 학교로 찾아왔다. 편지 잘 받아 보았노라고. 그리고 나로부터의 소식을 기다렸노라고. 그래서 우리는 다시 이전과 같이 만날 수가 있었다.
우리들의 만남이 새로이 익어갈 무렵, 언젠가 우리는 경춘선을 탔다. 당시 경춘선은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였다. 경춘선은 아득한 노스탤지어를 자아내었다. 북한강을 따라 나있는 기찻길 주변의 경관은 수려했다. 차창 밖으로 한가로운 시골마을의 풍경이 펼쳐지고 하얀색으로 곱게 단장한 레스토랑의 모습도 스치며 지나갔다. 강가에는 모락모락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어스름이 내릴 무렵 강가에 지는 낙조는 아름다움을 넘어 황홀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남이섬을 찾았다. 길 양쪽으로 키 큰 나무들이 서있는 오솔길을 호젓이 거닐거나, 자전거를 빌려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아보기도 했다. 잔디밭에 한가로이 드러누워 하늘만 바라보아도 좋았다. 가끔은 기차를 타고가다 이름 모를 자그마한 간이역에 내려서는 발길 닿는 대로 정처 없이 거닐어 보기도 했다...
세월이 더 흘러갔다. 나는 군복무와 취업문제로 이리저리 정신없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그 애는 프랑스 유학 갈 준비에 한창이었다. 별빛이 유난히 아름답던 차가운 어느 겨울밤, 나는 그 애가 프랑스로 떠나기 전 둘 관계를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그래서 가슴 속에 간직해두었던 감정을 고백하기 위해 낙동강 하구에 위치한 에덴공원을 찾았다. 반딧불이가 밝혀주는 길을 따라 둘은 공원 길 안으로 들어섰다. 저 멀리서 ‘ Sound of Silence’ 와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둘은 길모퉁이에 자리 잡은 어느 카페에 들렀다. 애플와인 파라다이스를 한잔시켰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왠지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무슨 일인지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다. 그 애 또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둘은 카페 바깥으로 나왔다. 겨울밤 공기가 차가왔다. 더없이 맑은 하늘에서는 무수한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날 이후 그 둘은 영영 다시 만나지 못했다.
*저자 이철환 프로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초빙위원
-현 단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재직)
*저서- 과천청사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한국경제의 선택, 14일간의 경제여행, 14일간의 (글로벌)금융여행 등 다수